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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畵/音.zine vol.15] 박현의 연주 에세이 - 모티브의 재발견 No. 11: 드뷔시 <현악사중주> 1악장
박현 / 2025-09-01 / HIT : 35

박현의 연주에세이-모티브의 재발견 No. 11


드뷔시 <현악사중주> 중 1악장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

 

 

  1893년, 드뷔시는 서른한 살의 나이에 그의 유일한 현악사중주를 완성한다. 1890년 세자르 프랑크가 발표한 현악사중주의 영향으로 현악사중주 편성에 집중한 시기였으며, 1892년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통해 무르익은 조성음악 기법을 맘껏 펼친 직후였다. 르쥐르 카탈로그[1] 번호가 매겨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현악사중주는 드뷔시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조성(사단조)과 오푸스 번호(Op. 10)를 명시한 유일한 작품이다. 드뷔시 작품세계의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현악사중주에서 보여준 그 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화성어법은 그 이듬해인 1894년 발표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L.86>의 기반이 되었다. 


  드뷔시는 현악사중주에서 이국적 음계, 그리고 네 악장을 관통하는 순환 주제를 사용한다. 그가 영향을 받은 프란츠 리스트와 세자르 프랑크의 순환주제 기법과 같이 1악장의 주제는 각 악장에 다른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이 곡에서 주제는 드뷔시의 새로운 화성 색채를 입고 매 악장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된다. 그는 어떤 새롭고 다채로운 방식으로 주제를 변모시켰을까?


  1악장의 1주제는 이국적인 음계로 이루어져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조표는 G단조로 쓰였지만 주제 선율은 프리지안 선법으로 만들어졌다. 선법의 신비로운 색채는 드뷔시가 당시 큰 영향을 받았던 인도네시아 전통음악 가멜란의 동양적인 5음 음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멜란의 영향은 현악사중주의 선법만 아니라 음색 표현에서도 나타나는데, 2악장의 타악기적 주법이나 교차 리듬, 작품 전반에 나타나는 이국적이고 모호한 화성의 음색에서도 느낄 수 있다. 1악장을 지배하는 [악보1]의 1주제 모티브는 두 마디 안에서 각 마디가 하행했다 상행하는 선형을 가진다. 첫 마디는 하행했다 짧은 턴을 만드는 삼연음으로 상행하고 두 번째 마디에서 당김음으로 속도감을 얻는다. 첫 마디에서 연주자가 눈여겨 봐야할 점은 첫 두 음들의 길이와 무게이다. 첫 음엔 테누토로 무게와 충분한 길이를, 둘째 음엔 내림활로 강세를 더했다. 연주자는 두 음에 모두 내림활을 써서 동등하게 강조한다. 이후 주제가 반복될 때는 첫 음은 악센트나 스타카토로 짧게 활의 속도를 내도록 하고, 둘째 음에 무게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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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1. 1주제 모티브, 1악장 1-2마디 


  이러한 1주제는 순환주제가 되어 2악장과 4악장에서 재등장하는데 주제는 각 악장에서 조성과 박자, 음색, 다이나믹, 캐릭터의 다른 옷을 입고 변모된다. 1악장에서 4/4 박자 안에서 슬러로 연결되었던 순환주제는 2악장에서 비올라가 연주하는데, [악보2]에서와 같이 6/8박자의 스타카토로 경쾌하게 탈바꿈된다. 이렇게 변모된 주제는 나머지 성부가 연주하는 피치카토의 가벼운 음색이 더해져 장난스러운 스케르초 성격을 만들어낸다. 3악장은 순환주제의 직접적인 사용은 없지만, 인상주의적 화성은 작품 전반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또한, 비올라 솔로가 이끄는 중간 섹션은 4악장의 도입부 전개방식과 매우 닮아있다. 4악장 도입부와 제시부에서는 순환 주제가 부분적으로 등장하다 [악보3]의 코다에 이르러 완전한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이 구간은 주제가 작게 시작되어 다이나믹과 속도를 고조시키며 작품 전체의 화려한 종결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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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2. 2악장, 1-2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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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3. 4악장, 코다


  1악장은 전통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소나타 형식의 큰 틀을 따른다. 제시부 주제는 발전 대신 그 영역 안에서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느낌을 준다. 경과구도 선율 보다는 내성 텍스쳐의 변화가 중심이 된다. 드뷔시 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특징적인 구간으로 [악보4]에서와 같이 부드러운 십육분음 패시지가 제1바이올린 선율 밑으로 흐른다.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만들어내는 텍스쳐는 화성과 음색적으로 모호함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물결과 같이 흐르며 선율을 전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짜임새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포함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쓰였으며, 훗날 이에 영향을 받은 라벨의 현악사중주에서도 비슷한 구간을 발견 할 수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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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4. 1악장, 15-16 마디 


  1주제와 대비되는 2주제는 [악보5]의 39마디부터 여린 다이나믹으로 네 마디 프레이즈를 이루며 펼쳐진다. B♭ 프리지안 선법 안에서 제1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함께 주제를 노래하면, 제2바이올린과 첼로가 삼연음으로 물결을 만든다. 앞서 언급했던 1주제의 경과구를 포함해 이와 같은 드뷔시의 ‘물결’ 텍스쳐를 효과적으로 연주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다. 연주자는 주법, 음색, 음정, 그리고 음향의 균형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량은 주선율을 해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평행적으로 움직이는 성부 사이의 음정을 정교하게 맞추어 모호한 음색을 만들어한다. 또한, 활의 움직임은 레가토로 이어가되, 왼손의 아티큘레이션은 앙상블을 위해 분명하게 연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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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5. 1악장 2주제, 39-42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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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6. 재현부 시작, 138-141 마디 


  1악장의 발전부는 첼로가 1주제 모티브를 연주하며 시작된다. 첼로의 모티브는 드러나도록 강조하여(un peu en dehors) 연주 하며, 제1바이올린이 화답하는 F#단조의 새로운 발전부 선율은 느려진 템포로 부드럽게 감정을 담도록 (doux et expressif) 지시되어있다. 대비되는 1주제와 발전부 선율의 대화는 제1바이올린에서 첼로 그리고 비올라로 옮겨지고, 템포가 처음처럼 회복한 뒤 점차 빨라지면서 변주된다. 변주는 조성 뿐만 아니라 성부의 역할, 짜임새를 달리 하며 쉼 없이 이어지며 G단조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극적으로 시작된 재현부의 1주제는 [악보6]에서와 같이 화음이 더해져 음량을 키우고, 악센트와 테누토가 더해져 강렬해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도입부와 달리 프레이즈의 호흡은 두 마디로 짧아지고 곧 삼연음 중심의 모티브가 곡을 더욱 빨리 전진시킨다. 삼연음 모티브는 도입부 1주제의 짧은 삼연음이 변형된 것으로 재현부와 코다에서 두 박에 걸친 삼연음으로 확장된다. 점점 빨라지는 종결부 역시 삼연음 모티브가 중심이 되며 한 박에 걸친 삼연음과 두 박에 걸친 삼연음이 3:2로 교차되는 복잡한 리듬패턴을 만든다. 마지막 종결구는 매우 빠른(Tres anime)템포의 6/4박자로 바뀌면서 격렬한 흐름을 만든다. 모든 성부가 동형진행으로 팔분음표를 쏟아내듯 이어가고, 에너지가 응축된 마지막 코드로 1악장의 압도적인 결말을 이룬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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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ançois Lesure에 의해 1977년 정리된 드뷔시의 작품 번호 카탈로그, L.번호로 표기된다.

[2] 화음웹진 3월호, 박현의 연주에세이-라벨 현악사중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