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의 연주에세이-모티브의 재발견 No. 12
드뷔시 <현악사중주> 3악장
박현
(바이올리니스트,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
드뷔시는 1903년 므슈 크로셰 드뷔시의 필명, 1903년 파리에서 발행된 문학잡지 질 블라스(Gil Blas)에 음악평론 및 다양한 음악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다.
라는 필명으로 문학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비한 밤의 시와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달빛이 만들어내는 수천 가지 소리 안에서 은밀히 감춰진 만질 수 없는 환상의 세계, 그러한 상상 속 장면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은 오로지 음악에 있다...”
드뷔시의 시적 감성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영역은 그의 음악 안에서 피어난다. 드뷔시 현악사중주 3악장은 그가 음악만이 표현 할 수 있다고 말한 ‘만질 수 없는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1910년 발표된 그의 유일한 현악사중주의 네 악장 중 1, 2, 4악장은 모두 1악장의 주제를 공유하며 순환적 구조를 이룬다. 이와 달리 3악장은 이러한 순환주제와 연관 없는 새로운 주제로 이루어져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드뷔시 특유의 인상주의적 음색으로 채색된다.

악보1. 도입부, 마디 1-5
악장의 도입부는 ‘조금 느리고 부드럽게 풍부한 표현으로 (Andantino doucement expressif)’라는 지시어 아래 모든 성부가 약음기를 사용하여 얇고 여린 음색을 만든다. [악보1.]에서와 같이 2바이올린이 시작하는 두 마디 모티브가 6/8 박자 안에서 크레센도로 붓점 리듬에 무게를 더했다가 작게 A♭음에 머물면 첼로는 피치카토로 화답한다. 비올라가 다시 이어받은 모티브는 1바이올린에게 건네져 본격적인 4마디 프레이즈 선율이 펼쳐진다. 2바이올린에서 비올라를 거쳐 1바이올린까지 각 성부를 통해 반복되는 리듬 동기는 각각 크레센도, 레가토, 테누토로 섬세한 변화를 이룬다. 단순한 모티브의 주고받음 같지만, 또 하나의 경이로운 점은 1바이올린의 주제가 시작되기까지의 각 마디의 조성 변화에 있다. 2바이올린이 G장조로 시작한 모티브에 첼로는 E장조로 화답하고, 다시 비올라가 G장조로 모티브를 재현하다 A♭에서 A로 반음씩 이동하면 첼로의 D♭ 지속음을 바탕으로 D♭장조에 다다른다. 이에 더해 그 위로 1바이올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악보2.]의 주제 선율은 F프리기안 모드 음계로 이루어져있다. 이렇듯 마디마다 예측할 수 없이 달라지는 모호한 조성은 신비한 분위기로 음악을 이끈다.

악보2. 첫 주제 선율, 마디 5-6
악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A-B-A구조를 가진다. [악보3.]에서와 같이 첫 섹션의 주제 선율이 27마디에서 D♭장조로 종지를 이루면 나란한 조로 이동하여 C#단조 안에서 3/8박자의 조금 빨라진 템포(Un peu plus vite)로 두 번째 섹션이 시작된다. 비올라가 시작하는 십육분음표와 삼연음으로 이루어진 리듬 모티브는 첫 주제의 종지에 쓰인 26마디의 하행하는 모티브에서 출발한다. 28마디 비에 시작되는 올라 솔로에 나머지 성부는 ppp음색으로 울리는 화성으로 화답하는데 이로 인해 비올라 선율의 프레이즈는 잠시 사분음표에 머문다. 이 코드들은 프레이즈를 단절시키기 보다는 비올라의 선율중간에 호흡을 주고, 따뜻한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짜임새와 템포는 4악장의 서주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재등장한다.

악보3. 마디 24-36
악보4. 마디 54-58
이어 모든 성부는 차례로 약음기를 빼고 선명해진 음색으로 탈바꿈하고, 두 바이올린의 이중주로 동력을 얻는다. 이어 비올라가 48마디부터 4+3마디 프레이즈 구조의 새로운 선율을 노래한다. 이 선율은 풍부한 표현으로 드러나게(en dehors et expressif) 연주하도록 지시되어있는데, 이를 [악보4.]에서와 같이 첼로가 이어받는다. 이어 2바이올린과 첼로가 짝을 이루어 선율을 4마디 프레이즈를 반복하며 발전시킨다. 다이나믹은 네 마디마다 커졌다 작아짐을 반복하며 템포를 조금씩 앞당기고, 온음씩 상승하며 발전하는 시퀀스는 2마디 프레이즈로 호흡이 가빠지며 크레센도로 음량을 끌어올린다. 이때 1바이올린과 비올라는 짝을 이루어 옥타브 삼연음을 슬러로 묶어 선율을 뒷받침 하는데, 1악장에서도 자주 등장한 드뷔시 특유의 물결 텍스쳐를 가진다. 에너지를 이어받은 1바이올린이 포르테 다이나믹안에서 선율을 G#단조로 전조하여 이어가고, 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함께 당김음 리듬으로 화성을 채워 감정을 고조시킨다. 두 번째 섹션은 대칭구조로, 다이나믹이 점차 다시 작아지고 다시 약음기로 음색을 바꿔 비올라 솔로로 연주했던 도입부 모티브를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함께 재현하며 두 번째 섹션을 마무리한다.
페르마타로 숨을 고르고, 첼로가 D#에서 반음을 내려 D지속음 위로 악장의 첫 주제 선율이 재현된다. 1바이올린은 처음과 같이 5마디 선율에 이어 옥타브 화음으로 반복한다. 이 모티브는 2바이올린을 거쳐 1바이올린으로 돌아와 점점 작아지고(en suffaiblissant) 1바이올린의 음이 A♭으로 상승하며 끝맺는다. 마지막 네 마디는 모든 성부가 최대한 작고 섬세하게 (aussi pp que possible) 음색을 만든다. 드뷔시가 상상했던 “달빛이 나뭇잎을 어루만지는 수천가지 소리”들이 숨어 있는 듯 여리고 꿈결 같은 엔딩이다. [畵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