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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um Critics' Collection

Hwaum Critics' Collection No. 5: 예술가의 뮤즈, 그리고 집사람
노지은 / 2025-06-01 / HIT :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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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뮤즈, 그리고 집사람

 

예술가의 뮤즈

인류가 예술이라는 불꽃을 피워 올렸을 때, 그 곁에는 언제나 ‘뮤즈’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은 예술이 인간의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 여기며, 신적 영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을 상징하듯,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명의 뮤즈는 문학, 음악, 무용, 역사 등 예술과 학문의 영역을 대표하는 신적 존재였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첫머리에서 뮤즈에게 노래를 청하며 시를 시작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아의 발화가 아니라, 신적 영감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쓰였다. 헤시오도스 역시 『신통기』 서문에서 뮤즈들이 자신의 입술에 신성한 숨결을 불어넣어, 신들과 인간의 계보를 노래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뮤즈는 단순한 영감의 상징을 넘어, 예술가의 존재 근거이자 예술의 신성함 자체를 상징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며 뮤즈는 신화 속 여신이 아니라, 현실 속 누군가의 얼굴과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삶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예술가와 세계 사이를 잇는 조용한 다리가 되었다. 오랜 예술사의 기록 속에서 만난 예술가의 연인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평생의 반려자가 되어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그 이상의 삶을 살기도 했다.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중섭(1916-1956)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바로 아내 이남덕(본명: 야모모토 마사코, 山本方子, 1921-2022) 여사이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나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역사의 폭풍 속에서도 삶을 함께 걸었다. ‘소가 오리에게’(1940), ‘발 씻어주다’(1941), ‘하나가 되는’(1941)과 같은 작품들은 청년 이중섭이 그녀를 얼마나 열렬히 사랑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미군의 일본 공습이 본격화된 1945년, 이남덕 여사는 이중섭과의 결혼을 위해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어 어렵게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런 그녀에게 이중섭은 ‘남쪽 지방, 즉 일본에서 온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이남덕(李南德)’이라는 이름을 선물로 지어주었다. 

원산에서의 달콤했던 신혼기는 잠시, 화가 이중섭의 삶은 가혹했다. 식민지 시절 해방과 전쟁, 분단이라는 격랑 속에서 그와 가족들은 빈곤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1952년 6월, 그는 결국 아내와 두 아들이라도 먼저 살리고자 처가가 있는 일본에 보내게 되면서 홀로 남았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에 거주할 자격이 쉽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족들과의 재회를 그리며 창작열을 불태웠다. 특히 그의 작품 속 가족은 단순한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의 뿌리였다.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화를 비롯하여 ‘길 떠나는 가족’(1954), ‘현해탄’(1954), ‘돌아오지 않는 강’(1956) 등 이중섭의 후기작에는 험난한 현실을 견뎌낸 사랑과 생의 흔적이 응축되어 있다.

 

"나의 최고 최대 최미(最美)의 기쁨, 그리고 한없이 상냥한 최애의 사람, 오직 하나인 현처 남덕군, 잘 있었소? 나는 당신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꽉 차 있소. 수속이 잘 안된다고 해서 속을 태우거나 초조해 하지 마오. 소품전이 끝나면, 곧 구형(시인 구상)의 도움으로 가게 될 거요. 당신의 아름다운 마음이 동요하지 않도록 해주기 바라오. 하루 종일 제작을 계속하면서 남덕군을 어떻게 해서 행복하게 해줄까... 하고 그것만을 마음속에서 준비하고 있다오. 나의 소중하고 소중한 멋진 천사 남덕군, 힘차게... 마음을 더욱 밝고 건강하게 가져주오. 이제 얼마 안 있어 알뜰한 당신의 마음과 아름다운 당신의 전부를 포옹할 수 있는 기쁨을 생각하면” — 이중섭의 편지 중에서

 

이중섭은 사랑하는 가족, 특히 아내 이남덕 여사를 그리며 작품 활동에 더욱 힘쓸 뿐 아니라 그녀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편지에 가득 담아 실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그 날을 고대하며... 그러나 1953년 여름 기적처럼 이루어진 단 일주일간의 가족과의 만남 이후 꿈같은 재회는 영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홀로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고통을 겪다가 서울적십자병원에서 황달, 정신병, 거식증 등이 겹쳐 1956년 9월, 향년 39세라는 나이에 무연고자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남덕 여사는 남편의 비보를 듣고 절망했지만 남은 가족들을 부양해야했기에 바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녀는 양재(洋裁)일과 더불어 보험회사 외판원으로 일하며 부지런히 두 아이를 키우고 남은 빚을 갚았다. 그녀는 전쟁과 가난, 불안정한 시대 속에서 두 아들을 키워내며 가정을 지키고, 남편의 부재와 세상의 냉혹함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작품을 정리하고 지켜내며, 세상에 그 정신을 알리고자 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유작을 보관하고, 회고전과 자료 제공 등에 힘쓴 그녀의 노력은 훗날 이중섭이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생전에는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남편의 예술 세계가 사후에 빛을 발하게 된 데에는 이남덕 여사의 묵묵한 헌신이 깊이 스며 있다. 이처럼 이남덕 여사는 단순히 이중섭의 아내, 집사람을 넘어 그의 작품 세계를 더욱 확장시키고 오늘날의 이중섭을 있게 한 뮤즈, 그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클라라 슈만의 사랑과 생애

서양 음악사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이들의 사랑은 단지 개인적 연애담이 아니라, 음악사에서 가장 치열하고도 깊이 있는 예술적 동행이자, 삶과 예술을 함께 건넌 동반자적 관계였다.

슈만은 젊은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결혼에 이른다. 이 시기, 슈만은 클라라를 향한 순수하고도 깊은 애정을 담아 <여인의 사랑과 생애(Frauenliebe Und Leben)> Op.42 (1840)를 작곡한다. 이 연가곡집은 한 여인이 사랑을 만나고, 결혼하고, 그리고 죽음을 마주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이 음악은 단순한 연정의 표현을 넘어서, 슈만이 클라라라는 존재 안에서 경험한 내면의 여정 그 자체이기도 했다.

하지만 슈만은 결혼 후 점차 정신적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병원 치료를 받았고, 결국 1854년에는 라인강에 몸을 던지려 시도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후 클라라는 남편의 곁을 자주 찾을 수조차 없었고, 1856년 그가 요양소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피아니스트이자 어머니, 병든 남편의 정신적 후견인으로서 삶을 짊어져야 했다.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 여사가 그러했듯 클라라 역시 단지 고통을 견디는 존재에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이후에도 유럽을 순회하며 연주했고, 슈만의 미발표 작품들을 정리하고 출판하며, 남편의 음악을 세상에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클라라는 자신 역시 뛰어난 작곡가이자 연주자였지만, 당시 여성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제약과 가사·양육의 책임 속에서 창작보다는 연주 활동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의 음악을 정리하고 세상에 알리는 데 헌신하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연주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또 하나의 예술가였다.

 

김성기의 「집사람」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 속에서도 ‘집사람’이라는 존재를 묵직하게 바라본 작품이 있다. 작곡가 김성기(1955–)는 2002년,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위촉으로 작곡한 현악 4중주곡 <집사람>에서 묵묵히 삶을 지탱해온 여성들에 대한 음악적 헌사를 담아냈다.

이 곡은 미술작가 정정엽(1962-)의 동명 회화 작품에서 출발한다. 정정엽은 이 작업에서 ‘집사람’이라는 어휘 자체에 담긴 한국적, 여성적, 생활사적 의미를 포착한다. 그녀는 말한다.

 

“그 여자들이 길을 가려고 한다. 자신의 길을 보기 시작하였다. 흔들리며 간다. 각기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겹쳐지고 연결되어 마치 함께 가고 있는 듯한...”

 

여기서의 '집사람'은 단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길을 보기 시작한 이들, 오랜 시간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렀지만, 그 틀 안에서도 자기만의 궤적을 세상에 새긴 존재들이다. 김성기의 음악은 이러한 주체성을 포착하여,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대화 속에 삶의 굴곡과 희망을 녹여낸다. 선율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출발해 서로를 비추고, 스며들고, 때로는 어긋나며 조율된다. 그 모양새는 마치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공통된 결을 이루며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것과도 닮았다.

‘집사람’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도 가끔 사용되지만, 그 어감 속엔 오래된 이데올로기와 동시에 오래된 존엄이 공존한다. 김성기의 <집사람>은 그 표현을 새로운 의미로 되살린다. 바로, 자신의 존재로 가정을 지키고, 침묵 속에서도 예술과 삶을 견뎌낸 인물들을 위한 음악이다.

 

예술가의 집사람

이중섭과 이남덕,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김성기의 음악에 담긴 ‘집사람’이라는 이름들. 그들은 예술가의 곁에서 단순히 영감을 제공하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가가 사라진 이후에도 그들의 이름과 정신을 세상에 남기고, 현실과 싸우며 다음 세대를 위한 삶을 만들어간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말한다. 뮤즈란 단지 신의 속삭임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 사라진 목소리를 세상에 끝내 들려주는 이들이다. 그리고 집사람은 단지 가정의 보이지 않는 중심이 아니라, 세상의 무게를 조용히 지탱하는 또 다른 주체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누군가의 몫까지 삶을 살아내며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기록되지 않을지라도, 세상의 무게중심을 조용히 움직인다.

 

글 노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