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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um Critics' Collection

Hwaum Critics' Collection No. 9: 통안의 우주
임야비 / 2025-11-01 / HIT : 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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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안의 우주

 

2025년 3월 12일 정동1928 아트센터에서 ‘실내악단 화음 토크 콘서트 : 반 고흐’의 울림이 있었다. 연주회의 첫 울림인 안성민 작곡가의 현악사중주 작품이 무대 뒤 스크린에 영사된 밤하늘 그리고 반짝이는 별과 함께 연주되었다.

 

*

 

안성민 작곡가의 2016년 작 현악사중주를 위한 ‘The Starry Night II’ (화음 프로젝트 Op. 166)는 Loop. Ph의 설치 작품 ‘osmo’에서 시작한다. (그림1,2)

 

NASA의 우주선 재료를 이용해 만든 osmo는 런던의 고가도로 아래에 가설된 직경 9미터의 거대한 통이다. 일종의 설치 미술 작품인 osmo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안에는 먼 우주와 빛나는 별이 투영된다. ‘Cosmos’란 단어의 ‘겉’인 ‘C’와 ‘s’를 걷어낸 ‘osmo’는 ‘속’이고 ‘통 안의 우주’다. 2014년 11월 osmo 안에 있었던 작곡가 안성민의 머리 속에서 또 다른 우주가 반짝였다. 

 

두 현을 반음 높인(F-Bb-D-G) 제1 바이올린과 반음 낮춘(Eb-Ab-D-G) 제2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가 오직 두 음만을 여러 번 반복한다. (그림4) 16분음표 4개가 기본 음형인데 첫 번째 음과 네 번째 음인 ‘밖’이 두 번째, 세 번째 음인 ‘안’과 이음줄로 연결되어 있다. (그림3) 이 음형 3개가 모여 한 마디가 되고, 이 마디는 작곡가가 지시한 횟수만큼 반복 연주된다. 끈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음악에 선율은 없다. 울림만 있다. 그리고 울림의 파장은 안과 겉을 맥놀이 한다. 

 

총 8개의 섹션과 5마디의 짧은 코다로 구성된다. 각 섹션은 7개의 서브 섹션으로 구획된다. 서브섹션의 반복 횟수에 흥미로운 수열이 등장한다. 1, 2, 3, 5, 8, 13. 앞항을 자신과 더해 다음 항을 만드는 피보나치 수열이다. 서브 섹션의 마디 수를 모두 더한 첫 섹션의 마디 수는 55다. 55는 34와 21의 합이고 21은 13과 8, 34는 21과 13의 합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두 번째 섹션은 34마디, 세 번째 섹션은 21마디, 네 번째 섹션은 13마디다. 공간이 수축하고 시간이 수렴된다. 반면 울림(음량)은 수축과 수렴만큼 고양된다. 

다섯 번째 섹션부터 마지막 여덟 번째 섹션까지는 위의 거울 상이다. 즉, 반환점에 해당하는 섹션 4의 끝과 섹션 5의 시작을 기점으로 내내 줄어들던 시공간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다. 13, 21, 34, 55 순으로 마디 수가 증가하면서 공간은 재팽창하고 시간은 다시 발산한다. 울림은 팽창과 발산만큼 잔잔해지면서 첫 번째 섹션으로 회귀한다. 

즉, 울림은 시공간과 반비례 양상으로 움직인다. 첼로 솔로의 ppp (피아니시시모)로 시작되는 가장 긴 섹션 1은 점점 커지면서 짧아져, 가장 짧은 섹션 4의 서브섹션 5에서 f (포르테)와 섹션 5의 서브섹션 4에서 ff (포르티시모)로 최고조가 된다. 이후, 음량은 f (포르테), mf (메조 포르테), mp (메조 피아노), p (피아노), pp (피아니시모)를 지나 다시 첼로 솔로의 ppp로 돌아온다. 아래 그림5의 그래프는 위 설명을 도식화한 것으로, 음악의 구조가 섹션 4와 5의 경계를 중심으로 대칭임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들어가 보자. 주목할 부분은 음악의 중심부다. (그림5의 ‘C’) 바로 이 지점에서 수축한 빛이 소리로 발산한다. 

 ‘C’ 지점을 작곡가가 런던의 osmo에 들어가 ‘The Starry Night II’를 착상한 시점이라고 가정하자. 그러면 섹션 1부터 3까지의 별빛은 우주(코스모스), 지구 안 그리고 osmo 안의 반짝임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공간은 수축하고 시간은 수렴한다. 이어 섹션 4는 가장 작은 ‘통 안의 우주’인 안성민 작가의 머리 속까지 들어온 코스모스의 별빛이다. 이 빛이 악상을 촉발하고, 힘의 양상은 섹션 5부터 역전된다. 작곡가의 머릿속에 착상된 ‘The Starry Night II’라는 빛은 이제 울림으로 변모하여 공간과 시간을 팽창시키며 소모된다. 아주 멀리서 온 별빛이 안으로, 속으로 들어와 음악이 된 다음, 다시 밖으로, 먼 우주로 가는 흐름이다. 섹션의 연주 시간이 다시 길어지면서, 안성민의 내적 울림은 네 현악기의 울림통을 공명한 후 정동1928 아트센터 홀을 흔들고 다시 밤하늘의 코스모스로 회귀한다. 이것이 섹션 5부터 8까지의 시간, 공간, 울림이자, 시각적 별빛의 청각적 현현(顯現; Epiphany)이다. 

 

 ‘The Starry Night II’에서 시공간의 수축과 팽창 그리고 울림의 고조와 침잠은 철저하게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 (그림6) 

섹션 1부터 4까지 태엽이 감기듯 공간이 오므라들고, 섹션 5부터 8까지 태엽이 풀어지면서 오르골의 울림이 시작된다. 태엽의 힘이 떨어지면 오르골의 음량이 줄듯, 뒤 섹션으로 갈수록 음량은 감쇄하고 울림의 파장은 길어진다. 

별빛 즉, 양자(量子)로 매개되는 공간의 수축은 코스모스, 지구, osmo, 안성민 작곡가의 머리 순으로 수렴되며, 이 응축의 힘은 태엽이 13→8→5→3→2까지 최고로 감긴 섹션 4(서브 섹션 5)의 네 악기가 함께하는 두 마디 f (포르테)에서 임계점에 도달한다. (그림5의 ‘A’) 이 팽팽한 시각 에너지는 작곡가에 의해 울림의 파장으로 변환된다. 이어 섹션 5(서브 섹션 4)의 두 마디 ff (포르티시모)에서 최댓값(그림5의 ‘B’)에 도달한 힘은 태엽이 풀리듯 음악을 방출하며, 이 역학에 따라 시공간은 작곡가, 울림통, 정동 아트센터 홀 그리고 다시 코스모스로 팽창한다. 

위 (그림7) 처럼 ‘The Starry Night II’는 겉과 안을 아우른다. 이는 ‘관통’이기라기 보다는 ‘이어짐’이고, 이 연결에서 발산과 수렴, 긴장과 이완, 팽창과 수축이라는 대립 항은 스펙트럼으로 펼쳐진다. 어떤 것의 안은 다른 것의 밖이고, 그 역도 성립한다. 그렇다면 안과 겉은 분리된 대립 항이 아닌 연속 값일 것이다. 우주와 원자는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규모의 (Macro)Cosmos와 Microcosmos다. 이 스펙트럼의 어디쯤에서 작곡가 안성민은 빛과 울림을 피보나치 수열 위에 올려 ‘통 안의 우주’를 펼쳐 놓았다. 우주와 원자 그리고 그사이에 펼쳐진 우리는 수열의 긴 끈처럼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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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3월 12일, 정동1928 아트센터 연주회의 주제는 ‘반 고흐’였다. ‘The Starry Night II’의 다섯 마디 코다가 사라지자, 무대 스크린엔 ‘osmo’ 영상 대신 고흐의 대표작인 ‘별이 빛나는 밤’과 ‘해바라기’ 등이 영사되었다. (그림8, 9)

 

고흐는 밤하늘의 별빛을 나선 은하로 표현했다. 나선 은하 안의 수많은 별과 태양처럼 빛나는 해바라기 씨앗의 배치는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다. (그림10,11) 이것은 우연도, 의도도 아니다. 벌어진 과거도, 일어날 미래도 아닌 지금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작곡가 안성민의 음악 ‘The Starry Night II’와 화가 반 고흐의 미술 작품들은 ‘통 안의 우주’를 펼쳐냈다. 그것은 닿을 수 없어서 아름답고, 너무 아름다워서 닿을 수 없는 시공간의 울림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울림의 스펙트럼과 지금도 공명하고 있다. 

 

글 임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