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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챔버오케스트라 현장음악 2002 ‘명상과 성찰의 여정’
내면의 응시와 불꽃이 도달한 존엄의 지평 -현장음악이 여는 사유의 길
인간의 길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2021』 123쪽에서 다음과 같은 역설(逆說, paradox)로써 역설(力說)했다.
“아아! 대체 왜 인간은 짐승보다 감수성이 우월하다고 뽐내는 것일까요. 그것 때문에 더 의존적인 존재가 되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인간의 충동이 배고픔과 목마름과 성적 욕망에만 있다면 다른 것에 의존할 필요가 거의 없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텐데요. 하지만 인간은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우연한 말 한 마디나 그 말이 전하는 풍경에도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렇다. 인간은 충동에 묶여 있는 존재인 동시에 본능이 추동하는 충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이다.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내면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마음이 내는 소리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타자와만 갈등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기 자신과도 싸운다. 즉 조용히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 내면에서는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음악은 분명 물리적 파동이 고막을 통해 신경으로 전달되어 감각되고 지각되는 물질적 현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음악은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때로는 불이 타오르듯 뜨거움 감정이 솟구치기도 하고 조용한 호수에 던진 돌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듯 고요히 일렁이기도 한다. 순수음악과 표제음악 논쟁까지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가사가 있고 내용을 표방하는 제목을 가진 음악이든 그런 게 없는 음악이든 음악은 대개 사람의 마음과 상호작용한다.
전문적인 의미의 명상을 수행하거나 철학적 차원의 성찰까지 이르지 못하더라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이 글에서는 음악에 한정하여 말하겠지만, 예술작품은 작품이 가진 심미성으로 감상자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만, 추함을 부각하여 상대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도 하며 미추의 사회적 기준 자체를 다루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은 관조하듯 잔잔하게 진행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불같은 격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기억의 재구성, 숨 쉬는 현장과 현장의 음악
인간이 한 줄기 바람이나 음악 한 자락에 마음을 뺏기는 이유는 우리가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끊임없이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기억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회상하는 순간의 정서와 인지에 따라 편집되고 재조립되는 역동적인 과정이다.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우리가 어떤 선율을 마주할 때 두뇌와 신경계는 과거의 조각들을 현재의 맥락에 맞게 재구성하며, 감정의 중추인 편도체는 그 기억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는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시간여행’은 우리가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설계하게 하며, 예술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소통을 가능케 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지향하는 ‘현장음악’은 바로 이 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전이라 불리는 거장들의 작품 역시 그 탄생의 순간에는 혁신이었으며, 당대 청중의 가슴을 두드렸던 생생한 목소리였다. 고전과 창작은 단절된 영역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연속체로 존재한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창작곡에 인문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관객에게 음악을 인식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해 왔다. 2026년 4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현장음악 2002: 명상과 성찰의 여정’은 이러한 예술적 정체성을 집약한 무대다. 악보라는, 일부에게는 닫힌 세계를 넘어 연주자와 청중이 마주하는 현장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이 음악적 대화는, 고전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창작을 고전으로 기억하게 하는 순간의 기록이 될 것이다.
고요한 응시: 마스네가 비추는 투명한 거울
음악회의 문을 여는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Méditation from Thaïs)>은 이번 여정의 첫 단계인 ‘고요한 응시’를 상징한다. 이 곡이 대중적인 감상용 소품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 누구나 편하게 연주회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고요하게 울리는 바이올린 독주 이면에는 성(聖)과 속(俗)의 치열한 갈등이 집약되어 있다. 쥘 마스네는 여성의 내밀한 심리 변화를 정밀하게 포착해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작곡가였다. 그는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을 바탕으로, 화려한 무희로서의 삶과 영적 구원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주인공 ‘타이스’의 복잡한 내면을 이 짧은 간주곡에 응축해냈다.
극 중 타이스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갈구하며 불안해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수도사 아타나엘의 끈질긴 설교와 권유는 그녀의 마음속에 작지만 거부할 수 없는 파동을 일으킨다. 제2막에서 연주되는 이 명상곡은 바로 그 찰나, 즉 세속의 화려한 보석과 의상을 뒤로하고 신성한 가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영혼의 회심(回心)을 묘사한다. 바이올린 독주가 자아내는 정제된 선율은 인간 내면의 평온함을 투명하게 비추며, 일상의 소란을 잠재운다.
이 곡이 지닌 진정한 무게는 선율 뒤에 숨겨진 아이러니에서 기인한다. 타이스가 이 명상을 통해 점차 신성한 평화로 나아가는 반면, 그녀를 교화하려 했던 수도사 아타나엘은 거꾸로 타이스를 향한 인간적인 욕망과 애착에 사로잡혀 고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 속의 교차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마주하는 고요함은 진정한 평화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격정을 잉태한 침묵인가.
고전의 범주 안에서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이 곡은 익숙한 아름다움 속에 ‘자기 성찰’을 숨기고 있다. 마스네의 선율은 감정의 정화를 넘어, 이어질 김신의 번뇌와 바버의 고독을 마주하기 전 우리 내면의 거울을 맑게 닦아내는 필수적인 의식이 될 것이다.
번뇌와 고행: 김신이 그려낸 인고의 소묘
두 번째로 마주할 김신의 <명상 중의 고행자 3>은 당대성과 현장성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서 화음프로젝트로 창작되었다. 작곡가는 18세기 중국 화가 장청이(Zhang Qingyi)가 그린 동명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대나무 한 그루와 마주한 채 홀로 앉아 있는 고행자의 모습은, 겉으로 평온해 보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수많은 번뇌와 인고의 굴레가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로 그림을 관찰해 보면, 육체적 한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자의 처절한 내면이 붓끝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퀭한 눈, 기괴할 정도로 길고 마른 손가락은 고행의 무게를 시각적으로 증명하며, 그 옆의 가느다란 대나무는 고립된 주체의 고독을 더욱 부각한다.
김신은 피아노, 하프, 타악기, 그리고 현악 오케스트라라는 다채로운 음향 매체를 활용하여 명상의 과정에서 겪는 치열한 심리적 역동을 음악화했다. 일그러진 주름 뒤에 숨겨진 번뇌, 속세의 찬란한 욕망이 선사하는 유혹,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인고의 과정이 중첩된 음색으로 표현된다. 인간이 스스로와 벌이는 이 고독한 전투는 마침내 헛된 찬란함이 사라진 자리에 고요한 묵상과 환희를 남긴다. 이는 예술이 어떻게 시대적 고통과 개인의 성찰을 담아내는 텍스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고독의 심연: 바버가 건네는 위로와 응시
성찰의 길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이어진다. 1936년 작곡된 이 작품은 20세기를 넘어 인류의 고독과 비애를 상징하는 고전이 되었다. 원래 현악 4중주의 일부였으나 작곡가 본인이 편곡하며 전설적인 울림을 갖게 되었고, ‘미국의 반공식적 추모곡’이라 불릴 만큼 사회적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음악은 고요하게 시작해 마치 망설이며 계단을 오르는 듯한 선율을 그린다. 이는 고통 속에서 내면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 선율이 정점에 도달했다가 찾아오는 무거운 정적은 격렬한 감정 뒤의 허무와 공허를 응시하게 한다. 비평가 모린의 말처럼 비애와 카타르시스로 가득한 이 곡은 대공황부터 9.11테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큰 슬픔과 늘 함께했다.
바버의 아다지오는 슬픔을 넘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 끝에 마주하는 고독의 정점이다. 이는 인간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우리가 자신과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준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무대에서 바버의 선율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서 완성되는 사건이 될 것이다. 각자가 가진 비애는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나누는 공동의 감각으로 탈바꿈한다. 특히 해결되지 않는 화음 속에서 소리가 사라진 뒤 찾아오는 정적은 음악의 끝이 아니다. 그 침묵의 순간, 시간의 수면 위에 떠 있는 파문을 마주하며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정서로 재편집하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불꽃의 승화: 강준일이 선포하는 생명력의 각성
여정의 마침표는 강준일의 <불의 전사(Fire Warrior)>가 장식한다. 화음프로젝트 Op.135로 세상에 나온 뒤, 2023년 안성민의 편곡을 거쳐 더욱 밀도 높은 울림으로 거듭난 이 작품은 화가 정영창이 그린 ‘서승’ 교수의 초상화에서 출발했다. 작곡가 강준일은 캔버스 위에 새겨진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흔적과 그 이면에서 넘실거리는 굴하지 않는 의지를 목격했고, 이를 ‘불의 전사’라는 강렬한 상징으로 치환했다.
이 곡의 기저에는 서승 선생의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의 역사가 흐른다. 1971년 유학 중 불법 체포되어 야만적인 고문 앞에 던져졌던 그는, 인간의 존엄을 말살하려는 국가폭력에 온몸으로 항거하며 스스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중화상을 입은 육체로 19년이라는 죽음 같은 수감 생활을 견뎌낸 그의 삶은, 단순히 한 개인의 수난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상전향이라는 이름의 반인권적 폭압에 맞서 끝까지 자신을 지켜낸 인간 정신의 처절한 투쟁기다. 작곡가는 바로 이 지점, 육신을 삼킨 물리적 ‘불’이 신념을 태우는 정신의 ‘불꽃’으로 승화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작품의 음악적 구조는 ‘소외된 음향’의 반란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취한다. 강준일은 화려한 고음역의 화려함 대신, 두 대의 비올라와 더블베이스라는 저음역 악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서승 선생이 옥중에서 목격했던, 배운 것 없고 힘없는 이들이 겪는 ‘가장 낮은 곳의 서러움’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닮은 짙고 어두운 음색은 그늘진 세계의 비명과 처절한 투쟁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악기들이 뿜어내는 거칠고 투박한 에너지는 불굴의 신념이 재앙과도 같은 고통을 뚫고 나오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결국 이 곡은 파괴적인 불길을 지나 영혼이 승화되는 구도의 여정을 그려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소진한 자리에 남는 것은 허무가 아니라, 국가폭력보다 인간의 삶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생명력의 각성이다. 서승 선생이 출소 후 고문 반대 운동과 동아시아 평화 연대를 위해 헌신하며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듯, 강준일의 음악 또한 비극적 서사를 넘어선 고귀한 승리를 선포한다.
<불의 전사>는 창작의 힘이 어떻게 현대사의 아픔과 공명하며 우리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지 보여주는 웅변이다. 우리는 이 저음의 파동을 통해, 가장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길잡이임을 깨닫게 된다.
맺음말: 시간의 수면 위에 떠 있는 파문
음악이 멈춘 뒤 찾아오는 정적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방금 마주한 선율들이 내면에서 마침내 고유한 서사로 완성되는 잉태의 시간이다. 인간은 기억을 기계적으로 저장하는 존재라기보다는 현재의 감각으로 그것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다시 꺼내 쓰는 존재라는 사실은 이번 명상과 성찰의 여정을 통해 더욱 명징해질 것이다. 마스네가 건넨 정화의 거울, 김신이 묘사한 고행의 주름, 바버의 깊은 고독, 그리고 강준일의 불꽃 같은 승화는 이제 각자의 내면에서 서로 다른 각자의 맥락과 결합하며 저마다의 새로운 풍경을 창조해낼 것이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제안하는 ‘현장음악’은 과거의 악보를 재연하는 행위를 넘어, 음악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 연주자와 청중, 그리고 나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인문적 사건이다. 이 무대 위에서 고전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감정에 진동하는 동시대의 메시지로 거듭나며, 창작곡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성찰을 담아내는 가장 인간적인 흔적이 된다.
결국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섬세한 방식이다. 불과 고독의 터널을 지나 내면의 길 끝에서 마주하게 될 것은, 재구성된 기억이 선사하는 풍요로운 정원이자 시간의 수면 위에 떠 있는 고유한 감정의 파문이다. 그 파문이 일렁이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인간임을, 그리고 우리의 삶이 매 순간 일회적이지 않은 예술적 기록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제 이 음악적 대화가 끝난 자리에서, 당신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다.
글 김인겸(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