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라 부르는 소리 Ⅱ
- 오늘 속 영원
R. 슈만: 연가곡 <시인의 사랑, Op.48> 중 ‘아름다운 5월에’
A. 피아졸라: <사계>(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사계)
박영희: <석양의 빛, 화음프로젝트 Op.198>
R. 슈트라우스: 가곡 <4개의 노래, Op.27 No.4> 중 ‘내일’
오늘은 신비로운 시간이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어제의 내일이 된다. 오늘만을 살아가지만 어느새 한 평생이 흐른다.
오늘 우리가 듣는 음악은 오묘한 시간의 문이다. 찬란한 5월의 한순간에서 한 해가 펼쳐지는 사계절까지, 그리고 소리보다 더 깊이 울리는 침묵의 순간까지— 음악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찰나에서 영원까지 넘나든다. 순간에 영원을 담아내기도 하고, 순식간에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한계 안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삶의 끝을 가까이 느끼는 이들은 대개 더 이상 물질의 축적에 자신을 쓰려 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삶 너머로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소중한 이와 함께 하거나 한순간을 더욱 밀도 있게 살아가는 일에 마음을 둔다.
문학 장르 가운데 시는 정서와 사상, 사건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형식이다.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고르고 다듬는 과정에서 말은 밀도를 얻는다. 한 단어가 또 다른 세계와 맞닿아 있기에, 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시공간을 넓힌다.
오늘 추천하는 음악의 시작과 끝은 시를 가사로 한 가곡이다. R.슈만과 R.슈트라우스는 시어가 다 담지 못한 여백까지 음악으로 확장했다. 두 작품 모두 작곡가가 결혼한 해에 쓰였다는 점에서, 사랑을 현재의 감정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영원을 향한 약속으로 노래한다. 첫 곡 ‘아름다운 5월에’는 하이네의 시에 붙인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1840) 중 첫 곡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모든 꽃봉오리들 피어날 때
내 가슴에도 사랑이 싹 텄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에
온갖 새들 노래할 때
나 그녀에게 고백 했네
내 그리움과 갈망을
눈부신 5월, 꽃봉오리들과 함께 시인의 가슴에도 사랑이 피어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고백은 이미 고통을 예감하는 화성 위에 놓여 있다. 불협화음으로 불안하게 시작해 반종지로 미완의 상태에서 멈추는 이 짧은 서막 안에, 16곡으로 이어질 연가곡의 결말이 암시되어 있다. 서글픈 청사진이다. 덧없이 끝나는 사랑이지만 찰나의 행복과 소망은 이 곡에서 언제까지나 노래된다.
피아졸라의 <사계>에서는 한 해의 모든 계절이 펼쳐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를 배경으로 탄생한 이 작품 곳곳에는 비발디의 <사계>가 색다르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는 탱고 음악의 거장으로, 격정적인 리듬은 네 계절을 신선하게 깨운다. 너무 익숙해져서 배경음악처럼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비발디의 <사계> 뿐이겠는가. 때로는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 같아 무심히 계절을 지나치기도 하고, 때로는 하루하루 일상에 치여 계절이 지나가는지도 모른다. 그사이 계절을 잃어버린다. 그러나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모든 계절을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세기를 한자리에서 느낄 수도 있다. 이 사계절 속에서 18세기의 비발디와 20세기의 피아졸라가 교차한다. 이러한 음악을 듣는 시간은 짧은 인생에 왜 긴 예술이 필요한지 묻게 한다. 예술은 우리의 시간을 확장시킨다.
박영희의 석양의 빛은 해 저무는 시간의 풍경을 소리로 응축한 작품이다. 거대한 붉은 해가 지평선에 닿는 찰나부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짧은 시간이 무수한 떨림으로 공간에 흩뿌려진다. 2018년 현악5중주(화음프로젝트 Op.193)로 초연된 뒤, 같은 해 현악 합주를 위해 다시 다듬어졌다(Op.198). 간결하고 사색적인 울림은 합주 편성에서 가슴을 흔드는 전율로 증폭됐다. 작곡가는 현악 합주에서 “넓은 하늘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색깔이 여운을 남기는 아름다움을 소리로 표현하고자”했다고 밝혔다. 해가 사라진 뒤에도 잔상이 남듯이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여운이 남는다. 박영희는 이 작품에서 특별히 여운의 시간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 석양의 여운은 우리 전통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묵음의 상태라고도 할 수 있는 순간을 생각했고, 이 소리들을 듣고 있는지 아닌지 하는 그 상태로 끝까지 지속됩니다.”
타오르는 태양만큼 노을은 이글이글하다. 뜨거운 태양을 삼킨 대지와 바다는 속울음으로 끓는다. 이 속울음 끝에서 소리보다 강렬한 고요가 청중들을 감싼다.
감동적인 연주가 끝나고 여운을 음미하는 짧은 순간은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 감각을 선사한다. 문득 시간은 멈춘 듯하고, 이내 영원에 닿은 듯하다. 마지막 음악, 미래의 소망을 담은 슈트라우스의 ‘내일’에서는 느려진 시간 속에서 침묵의 묘미가 극대화된다. ‘내일’은 1894년 슈트라우스가 결혼한 해에 아내에게 결혼 선물로 헌정된 <4개의 노래, Op.27> 중 마지막 곡으로 존 헨리 맥케이의 시에 음악을 붙였다.
내일도 태양은 다시 빛나고
내가 가야 할 길 위에서
이 태양은 숨 쉬는 찬란한 대지 위에서
우리를 결합시켜 행복하게 하리라,
그리고 푸른 파도치는
저 넓은 해변으로
우리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내려오리라.
말없이 서로의 눈 속을 바라볼 때,
우리 위에 행복의 고요한 침묵이
내려오리라.
완만하게 솟았다 가라앉는 전주는 이례적으로 길다. 마치 끝나지 않을 듯. 눈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복한 침묵 속에 이어지는 후주에서는 전주 첫 두 마디의 선율이 네 마디로 확장되며 시간을 늘린다. 마지막 마디는 긴 온음표에 페르마타가 붙어 시간을 붙잡아둔다. 그 속에 행복이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절절히 담긴다. 음악의 시간은 이렇게 다르게 흐른다. 그 흐름 속에서 사라질 오늘은 끝내 영원으로 남는다.
서주원(음악평론가·음악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