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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15] 한국 창작음악의 현장을 짓다 II: 창작, 현대, 현장의 경계 허물기
안정순 / 2025-09-01 / HIT : 23

한국 창작음악의 현장을 짓다 II

: 창작, 현대, 현장의 경계 허물기

 

안정순

(음악평론가, 음악학박사) 

 

 

  갤러리를 연주 공간으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활동을 들여다보면, 그 정체성의 핵심에는 ‘창작곡 위촉’을 중심으로 한 화음프로젝트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화음이 단순히 창작 프로젝트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해설이 있는 음악회’, 학문적 탐구를 곁들인 ‘렉처 콘서트 시리즈’, 그리고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그림책 음악회’를 기획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대음악앙상블 소리나 팀프앙상블 등 다른 전문 연주단체들이 보편적으로 운영하는 구조와도 유사하다. 즉 자체 기획 연주회, 교육 프로그램, 어린이/가족 프로그램이라는 세 가지 축은 오늘날 거의 모든 전문 현대음악 단체가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틀이다.

 

  그러나 화음의 차별성은 그 출발점에 있다. 화음은 애초에 현대음악 연주단체가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소규모 현악앙상블로 출발했으며, 1996년 챔버오케스트라로 개편한 뒤에도 주로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전환점은 2002년 서호미술관에서 시작된 ‘화음자화상프로젝트’였다. 미술관 전시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창작곡을 연주하는 실험이 가능했다. 박상연 예술감독의 의도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자화상’이라는 제목 때문에 실제 전시장에 자화상을 찾는 해프닝까지 벌어졌고, 이후 ‘화음프로젝트’라는 간명한 이름으로 수정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명칭 변경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당시만 해도 일반 연주단체가 신작을 위촉해 프로그램에 포함한다는 것은 매우 생소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화음은 전시 주제와의 공감, 그리고 갤러리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있었기에 이를 실현할 수 있었다. 시각 예술과의 접합이라는 현장성은 화음이 창작음악을 무리 없이 도입할 수 있게 했고, 이는 단체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화음은 서호미술관을 거점으로 하여 갤러리와 협업하며 활동을 넓혀갔고, 시각예술과 지역 사회의 결합을 자연스럽게 시도하였다. 오늘날 미술관에서의 음악 공연은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화음에게 이 공간은 단순한 실험무대가 아니라 활동의 근원지이자 정체성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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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서호미술관에서 열린 화음자화상프로젝트 음악회

 

 

  음악적 행위가 수행되는 현장 속으로

 

  화음이 위촉을 통해 선보이는 창작곡은 작곡협회나 작곡동인에서 발표되는 곡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협회의 작품은 작곡가 중심의 자기 표현이 강하다면, 연주단체에 위촉된 작품은 공연 프로그램의 성격, 예상 청중, 그리고 현장의 맥락을 반드시 고려하게 된다. 위촉 작곡가는 곡을 쓰는 순간부터 공연이라는 현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공연 중이나 이후에 즉각적인 청중의 반응을 받게 된다. 결과적으로 화음이 위촉한 창작곡은 상업적 시장의 규모와는 다른 차원에서 현장의 수요와 청중의 반응을 반영한 음악이 된다.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러한 맥락에서 연주단체의 활동을 ‘현장 연구’로 설명한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주자가 단순히 작곡가의 작품을 전달하는 수동적 매개자가 아니라, 창작과 연주의 과정에서 능동적인 생산자였음을 강조한다. 이 설명은 화음의 활동 방식과 잘 맞아떨어진다. 화음은 창작음악과 현대음악, 서양의 고전 레퍼토리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프로그램 안에 뒤섞으며, 공연 현장에서 이를 청중과 함께 경험하게 한다.

 

  따라서 화음이 이해하는 음악회장은 단순히 무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음악적 행위가 수행되는 현장이다. 여기서 장르적 구분, 시대적 경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화음이 추구하는 ‘현장음악’은 바로 이러한 탈경계의 실천이며, 동시에 청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방식이다.

 

글로컬의 방식으로

 

  화음의 활동은 ‘글로컬(glocal)’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글로컬은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로, 이미 세계화된 환경 속에서 지역적 특수성을 새롭게 접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최근 젊은 음악가들은 전통을 고정된 양식으로 바라보기보다 현재적 맥락에서 자유롭게 재해석하고 변형한다. 화음의 위촉 작업 역시 이러한 태도와 닮아 있다.


  많은 현대음악 단체가 해외 신작을 국내에 소개하거나, 국내 작품을 해외에 알리는 방식으로 수평적 확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화음은 다른 길을 택했다. 화음은 지금까지 약 100여 명의 한국 작곡가에게 240곡에 이르는 창작곡을 위촉해 초연했고, 이들 작품에 단체 고유의 작품 번호를 부여해 관리하며 재연을 이어가고 있다. 즉 해외 확장보다는 한국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우리 공동체의 감각과 경험을 무대에 올려왔다. 이러한 화음의 행적은 단순히 ‘한국적’이라는 범주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글로벌 시대의 감수성 속에서 로컬의 독창성을 실험하는, 화음만의 글로컬 전략이다.

 

  해송처럼 자라난 나무

 

  박상연 예술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화음을 나무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했다. “화음을 쭉쭉 뻗어 결국 가구의 목재로 자라게 하고 싶진 않아요. 동해 바닷가의 해송처럼 우리의 토양, 우리의 문화에서 자라나는 나무였으면 합니다.” 이 비유는 화음이 추구하는 철학을 잘 보여준다. 완결된 목재처럼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가공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토양 위에 뿌리내리고 공동체의 바람과 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나무. 그것이 곧 화음의 음악이다.

 

  좋은 연주는 단순한 기술적 완성을 넘어선다. 음악이 인간의 영혼을 담은 예술이라면, 연주란 공동체적 영혼을 해석하고 풀어내는 과정이다. 화음은 창작, 현대, 전통의 경계를 허물고, 음악을 우리 시대의 현장에서 살아 있는 나무처럼 자라게 하는 단체다. 1990년대 한 백화점 갤러리에서 출발한 소규모 앙상블은 이제 한국 창작음악의 가장 많은 창작곡을 생산하는 단체가 되었고, 21세기 한국 현대음악의 흐름에 반드시 기록되어야 할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였다. [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