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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레퍼토리 프로젝트 Heritage of Classics Ⅱ: Variety of Forms] 또 다른 시공간의 경험과 또 다…
김인겸 / 2022-08-21 / HIT : 978

비평 또 다른 시공간의 경험과 또 다른 나(alter-ego)’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레퍼토리 프로젝트

Heritage of Classics : Variety of Forms (클래식의 유산 : ‘형식의 다양성’)

김인겸 (음악평론가)

 

인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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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이는 기계(Twittering Machine(Die Zwitscher-Maschine)),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1922, 뉴욕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City), 출처 위키피디아

 

음악의 최종 목적으로서의 탈영토화된 리토르넬로를 생산하고 이것을 코스모스에 풀어놓는 것, 이것이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Produire une ritournelle déterritorialisée, comme but final de la musique, la lâcher dans le Cosmos, c'est plus important que de faire un nouveau système.)”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 1930-1992), 천의 고원(Mille Plateaux), Minuit, 1980, p.433


 

프롤로그

 

인트로에서 소개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인용문은 그 자체의 난해함과 은유성으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저자들이 천의 고원11장 도입에 소개한 클레의 위의 그림 역시 간단치 않다. 이 글에서는 위의 인용문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2022722일 오후 730분에 예술의전당 IBK 챔버홀에서 열렸던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프로젝트 두 번째 연주회에 대한 어떤 감상’, 혹은 한 읽기의 입구(intro)로 활용하고자 한다.

 

저자들은 그림에 이어 한 이야기 조각을 들고 나왔는데, 공포를 자아내는 공간에 있는 한 꼬마가 무서움을 이겨내기 위한 수단으로 마음속으로 음악을 흥얼거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때면 바이올린을 배워 외우고 있던 짧은 악곡을 머릿속에서 연주함으로써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던 기억이 있다. 소설가 정이현도 어느 소설에선가 비슷한 상황을 묘사했다. 요컨대 시간예술인 음악은 흘러가는 시간 동안 독자적인 시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여러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증언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음악을 만들고 즐겨왔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형식이 생겨났으며 형식들은 때로 양식으로서 정착했다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용되거나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보다” “탈영토화된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이를 코스모스에 풀어놓는 것이 음악의 최종 목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중요한 현상임은 부정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번 연주회에서 작품마다의 탈영토화를 화두 삼아 네 곡을 감상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시공간을 경험하며 그 시공간에서 또 다른 자아(alter-ego)’를 발견하기도 했다.

 

 

템포와 리듬, 달의 이지러짐과 차오름

 

고전 시대에 모음곡(suite)으로 정립된 춤곡 양식은 이미 실제 춤과는 멀어졌지만, 당대 청중들은 춤곡 이름만으로 춤 스텝과 특정 무곡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음악의 템포와 리듬을 결정한 것도 특정 무곡 양식이었다. 야나체크(Leoš Janáček, 1854-1928)<현을 위한 모음곡>은 고전 모음곡 양식을 차용했음에도 여섯 곡의 제목을 춤곡 이름 대신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써 각 악곡을 명명했다. 야나체크는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변용함으로써 특정 무곡에 자신의 음악을 가두지 않고 음악에 자율성을 부여한 것이다. 모데라토, 아다지오, 안단테 콘 모토, 프레스토, 아다지오, 안단테로 이어지는 여섯 곡은 템포의 대조를 근간으로 하여 다양한 리듬과 선율, 화성이 음악이 조합구성되는 경우의 수를 늘려갔다. 여기에 약음기를 사용하는 등 음향의 다채로움까지 더해지며 야나체크의 작품은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음악감독 박상연은 템포와 리듬을 정교하게 해석하여 대조가 자아내는 아름다움을 충실하게 구현해내고자 했고,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를 물리적으로 정확히 표현했다.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레퍼토리를 좋은 연주로 감상한 흔치 않은 무대였다.

 

 

텍스처, 씨줄과 날줄의 촘촘한 교직

 

바흐(J. S. Bach, 1685-1750)는 바이마르 시절, 비발디(A. Vivaldi, 1678-1741)에 매료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로부터 간명한 주제를 작곡하는 법, 화성적 짜임새를 명료하게 하는 법과 리토르넬로 개념에 기초해서 주제를 웅대하고 균형 잡힌 형식 구조로 발전시키는 법을 배웠다.(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제7판 상 481쪽) 베토벤(L. v. Beethoven, 1770-1827)은 후기 작품에서 음향표현상의 이유이든 전통양식에 대한 통찰의 결과이든 과거의 장르와 양식을 자주 사용하였다. 특히 모방 대위법, 즉 푸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그 대표작이 현악4중주 <대푸가> Op.133이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현악4중주 원곡을 실내오케스트라로 규모를 키워서 연주했다. 하나의 악기가 하나의 파트를 담당하는 현악4중주 편성에서 느낄 수 있는,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내는 듯한 선명한 음색이 사라진 자리를 몸피가 두터운 풍성한 음향이 채웠다. <대푸가>의 횡()으로 진행하는 주제선율들과 주제를 모방하여 진행하는 성부들이 종()으로 맞물리는 음향들이 실내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는 무거운 질량으로 인해 촘촘한 교직에서 그치지 않았다. 거센 물줄기가 합쳐지고 큰 파도가 충돌하는 것 같은 환상이 새로운 시공간으로 필자를 데려다놓은 듯했다. 다만 큰 편성에서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거칢과 무거움이 원곡 악보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이상적 음향에서 멀어지게 한 측면이 있었다.

 

 

파사칼리아, 과거와 미래의 소통으로서의 변주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를 변주하여 풀어내는 방식은 음악의 역사와 함께한다. 바로크 시대에 작품 이름으로도 흔히 사용된 파사칼리아 양식은 반복되는 저음부 위에서 주제선율을 변주하는 변주곡의 일종이다.

 

백영은은 2008년에 발표했던 실내관현악을 위한 <내일의 기억>에서 여섯 음으로 된 주제를 가져다 2010년에 바이올린과 현악합주를 위한 <‘내일의 기억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로 썼으며 이 곡은 화음챔버오케스트라 위촉곡으로 같은 해 611일에 화음프로젝트 Op.96’으로 초연되었다. 이번 연주에서는 2022년 수정판을 사용했다.

 

바로크적 전통 양식의 파사칼리아는 주제를 변주하는 동안 증폭과 발전의 논리로 클라이맥스로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창세에서 종말로 진행하는 기독교의 직선적 역사관을 연상시킨다. 반면 백영은의 <‘내일의 기억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는 파사칼리아라는 형식을 차용하되 내용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여섯 음(B-G-F-C-E-D)과 이 순서를 뒤집어 거꾸로 진행하는 여섯 음을 만들어 열두 음으로 독주 바이올린은 주제를 제시하고, 이후 독주 바이올린과 현악합주가 주제의 열두 음을 하나씩 변주한다(필자는 들을 때마다 변주가 13개나 14개로 들려서 이상했다).

 

백영은은 현악오케스트라를 제1바이올린, 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의 다섯 파트로 나누지 않고, 바이올린을 네 파트, 비올라와 첼로를 각각 두 파트씩 잘게 쪼개 아홉 파트로 편성했다. 하나로 응축되는 집약성과 통일성보다는 다양한 목소리의 자유로운 대화를 강조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또한 리듬과 박절, 선율의 흐름에서도 연결되는 듯 단절되고, 끊어지는 듯 이어졌다. 독주 바이올린은 상승하다가 하강했으며 또렷한 음색으로 연주하다가 텅 빈 하모닉스로 되돌아갔다. 트릴은 때로 무의미를 설파하는 듯했다. ‘내일의 기억이라는 제목처럼 작품에서는 끊임없이 다가오고 소멸하는 현재에서 미래는 금세 과거로 멀어지고, 흘러가버린 시간의 자리에는 기억만이 남는다. 니체(F. W. Nietzsche, 1844-1900)가 주장한 영원한 창조와 영원한 파괴가 반복되는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를 떠올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 작품은 필자를 직선의 흐름이 아닌 순간들이 원형회귀하는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하나 더 있다. 이 작품은 다주체시대에 모두 소통을 도모하지만 소통이 실현되기 어려운 현실을 은유하는 듯하다. 솔로 바이올린과 아홉 파트는 열 주체를 상징한다. 이들은 한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때로 협화음을 내지만, 화성과 리듬, 텍스처 등에서 끝내 제 갈 길을 간다. 그래서 고독한 인간이라는 존재론을 떠올린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여러 번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필자는 지금-여기, 이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래된 창고, 소환과 재해석의 장()

 

버르토크(B. Bartók, 1881-1945)<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디베르티멘토>는 음악의 오래된 창고 같다. 낡은 것들이 모여 있지만 쓸모없는 고물이 아닌, 여전히 빛나는 보물을 보관한 공간이다. 사실 고물을 고물이게 하는 것과 이를 보물로 재탄생시키는 것의 차이는 이를 운용하는 사람의 통찰력과 솜씨이다. 버르토크의 작품이 보물인 것이야 주지의 사실이겠으나 음악에서 연주자의 몫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보물을 얼마나 보물답게 재연해내느냐에 있다.

 

음악감독 박상연과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보기 드문 호연으로 버르토크와 이 작품의 진면목을 청중에게 선사했다. 음악적 재료의 수집가이기도 한 버르토크는 이 작품에서 합주협주곡의 형식, 민요가락과 리듬, 반음계 오스티나토, 카논과 푸가 등 대위법 기법 등 수많은 옛것을 활용했다. 이런 작품에서 개별 요소에 매몰된 연주를 하면 각 요소들은 파편화되어 청중들이 작품 전체를 조망하기 힘들어진다. 박상연은 작품의 다양한 세부요소가 주는 즐거움을 살리는 동시에 흐름과 연결을 매끈하게 하여 대조와 조화의 미학을 살렸다. 앙코르로 연주한 그리그(E. Grieg, 1843-1907)<홀베르그 모음곡> ‘전주곡에서는 그 경쾌함 속에서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레퍼토리 시리즈의 두 번째 연주회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자축하는 의미도 느껴졌다.

 

 

에필로그 탈영토화와 풀어놓기

 

연주회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연주회는 흘러갔고 모두 각자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고 또 살아낼 것이다. 일상에 붙들릴 수밖에 없고 그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음악을 업으로 하지 않거나 필자처럼 때때로 업으로 하는 자는 왜 음악을 듣고 감상하며 좋아하는지 의문을 던질 때가 있다. 이번 연주회를 보고 이 글을 쓰면서 적어도 한 가지 답은 얻었다.

 

영토는 권력이 내재된 개념이다. “탈영토화는 그것이 무엇이든 기존의 권력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물론 음악작품 그 자체가 일종의 시스템으로서 고유의 영토를 형성할 수 있으나, 음악이 흘러가는 시간만큼은 일상을 살아가는 세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나 방종은 아니고 음악의 자율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범위에서의 자유이다. 음악에서 가능한 다양한 탈영토화를 통해 그 음악이 선물하는 새로운 시공간을 주체적으로 향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음악의 존재 이유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탈영토화에 후행하는 풀어놓기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해석을 필요로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소통과 공유 정도로 이해하고 싶다. 맨 앞에 소개한 파울 클레의 그림을 보자. 노래하는 새처럼 보이나 화가는 지껄이는 기계라고 이름 붙였다. 마찬가지로 음악이라는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지껄이는 기계가 많은 세태에서 탈영토화를 가능하게 하는 음악회를 기획하고 그 기획을 실현하는 연주를 하는 단체가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를 느낀다. 이렇게 좋은 연주를 알려서 공유하는 일이 글로써 조금이나마 성취된다면 필자 또한 풀어놓​ 작업에 계속 동참하고 싶다[畵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