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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2021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 백남준을 만나다] 오늘의 예술을 만드는 것
송주호 / 2021-09-27 / HIT : 59

오늘의 예술을 만든다는 것

 

2021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 III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백남준을 만나다

202197() 오후 7:30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 송주호

 

돌아보기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유비쿼터스, 스마트 시티, 초연결 사회, 메타버스 등 다양한 표현으로 곧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살아갈 모습을 그리곤 했다. 과거는 미개했고, 오늘은 부족하니, 앞날을 완벽하게 만들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 간혹 무대에서 저명한 인사가 힘 있는 어조로 미래를 설파할 때면, 미래가 곧 천국이라는 교리를 믿는 종교의식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레트로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는 것부터, 우리가 과거의 의미를 알고 소중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팬데믹 시대의 요즘은 이러한 과거에 대한 관심이 탐미적인 동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팬데믹 이후의 미래를 꿈꾸기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당연하게 누렸던 일상이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 축복이었음을 깨달았다는 것, 그리고 미래를 다시 돌아가는 방향으로 꿈꾼다는 것은 단지 옛날이 좋았지라는 노년기의 사고가 아니다. 마스크, 거리두기, 자가격리, 백신, 배달, 원격회의, 재난지원금 등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과거의 축복을 다시 받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 모두 우리 시대의 구도자가 되었다.

이러한 때에 올해로 20년째가 된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이 지난날들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 것은 시대의 반향이다. 물론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이전부터 초연작들을 재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왔고, 홈페이지에서 연재하고 있는 화음큐레이션을 통해 과거의 작품들을 다시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하지만 재연 위주로 페스티벌을 기획한 것은 올해가 처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본 글을 쓰고 있는 20219월까지 위촉 및 공모를 통해 쌓은 215곡의 방대한 초연 레퍼토리는 단연 한국 최고 수준으로, 화음챔버오케스트라는 풍부하고 탄탄하며 독특한 아카이브를 갖추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64박수근을 주제로 첫선을 보였고, 이어서 97일은 백남준을 주제로 선택하여 화음챔버오케스트라, 백남준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열었다.

 

우리 기억 속의 백남준

우리의 기억 속에 백남준(1932-2006)은 어떤 모습일까? 플럭서스 시절의 충격적인 퍼포먼스, 독특한 모양으로 쌓아놓은 브라운관 TV, 그 속에서 소란스레 움직이는 색색의 이미지들, 제멋대로 꺾이고 휘어진 네온등. 백남준은 이렇게 퍼포먼스 아티스트혹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있고, 본인도 이 분야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피아노를 배웠고, 도쿄에서 쇤베르크로 학위논문을 썼으며, 뮌헨과 프라이부르크에서 작곡을 공부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언급되지 않는다. 컬러TV 작품에 대해 “1,200만 개의 건반을 가진 피아노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그의 예술적 사고에는 항상 음악이 자리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비추는 빛에는 선율, 화음, 음색, 리듬이 있다. 남다른 역동성을 갖춘 이유이다. 그렇다 보니 백남준의 미술 작품은 시각뿐만 아니라 독특한 음악적감흥을 준다.

()화음이 지난 2017년에 백남준을 주제로 위촉한 백영은과 최은진의 작품, 그리고 전현석과 김신의 공모당선작은 바로 그 음악적 감흥의 기록이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다른 날 두 장소에서 초연된 이 네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으며, 백남준을 퍼포먼스 아티스트의 길로 이끈 존 케이지의 곡도 함께 연주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경험을 제공했다.

 

연주 돌아보기 I: 상상과 조화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는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프라이부르크 음대에서 볼프강 포르트너에게 배우던 백남준은 1958년에 다름슈타트 하계음악강좌에서 존 케이지를 만났다. 이곳에서 케이지의 실험적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아 자신이 추구할 예술 세계를 정했고, 2년 후에 백남준이 공연 중에 케이지에게 다가가 가위로 넥타이를 자르고 머리에 샴푸를 끼얹은 유명한 사건이 벌어진다. 결국 백남준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포르트너는 백남준에게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추천서를 써주는데, 백남준을 표현할 때 종종 등장하는 비상한 현상이라는 말이 바로 이 추천서에 등장한다.

그렇기에 이번 음악회에서 존 케이지를 연주했다는 것은 유의미하다. 비록 백남준의 눈을 번쩍 띄게 했던 존 케이지의 우연 음악이나 퍼포먼스 등 불확정성 음악을 재연하지 못하여 아쉬웠지만, 비용이나 준비 등 다양한 측면에서 콘서트 무대에서의 한계를 돌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존 케이지의 <네 부분의 현악사중주>(String Quartet in Four Parts: 1949/50)를 선택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곡은 본격적으로 우연 음악에 빠져들기 직전의 작품으로, 많은 것이 결정되어 우연적 요소는 많지 않고, 심지어 리듬 구조가 대단히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있다. 비록 백남준과의 연관성은 많지 않지만, 존 케이지라는 기이한 현상도 이러한 고민이 선행되었음을 살펴보는, 짧지만 의미 있는 기회였다. 개념 기반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 안의 자리한 고민과 생각이기 때문이다. 혹시 백남준도 그를 만나기 전에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화음챔버오케스트라의 연주 또한, 분명히 결정되어있는 악보를 연주한 것이지만, 예술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음악 청취를 넘어 예술에 대해 고민해보는 자리에 적절한 첫 곡이었다.

이어지는 창작곡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같은 미술 작품을 보거나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 예민한 감각을 가진 예술가들은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선 공모당선작인 김신 작곡가의 <입으로 듣는 음악: 비상한 현상>(Mouth Music: Extraordinary Phenomenon: 2017)과 위촉작인 최은진 작곡가의 <낡은 기억들>(2017, rev. 2021)은 각자의 경험에 바탕을 둔 각자의 대답을 들려주었다.

먼저 연주된 김신의 작품은 플루트와 알토플루트, 클라리넷, 베이스클라리넷을 위한 사중주로, 1963년 부퍼탈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서 공개된 입으로 듣는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다. 백남준의 이 작품은 카트리지를 입으로 물고 바늘을 레코드판 위에 올려놓는 퍼포먼스로, 이에 김신은 입으로 연주하는 관악기를 위해 작곡했다. 작곡자는 백남준의 머릿속에서 들린 소리작품을 진행하던 도중 바깥에서 들린 소리이 두 가지를 상상했고, 이 두 가지 소리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이 좋은 호응을 얻은 이유는 바로 상상에 있다. ‘상상은 예술 작품이 갖는 기본 속성이다. AI가 인간이 많은 능력을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어도 예술만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AI는 학습을 통해 예측할 수는 있어도, 학습을 벗어나는 상상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를 들려주었고, 감상자에게도 많은 자극과 아울러 상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감상이 단지 수동적인 수용이 아니라 적극적인 예술 활동의 하나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했다. 특히 알토플루트를 제외한 세 연주자가 모두 백남준아트센터에서의 초연에 참여했던 연주자들로, 홀에서 열린 이번 재연에서 음악적 제스처의 효과를 훌륭히 표현하여 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은진의 <낡은 기억들>은 대전시립미술관 로비 중앙에 전시되어있는 백남준의 프랙탈 거북선을 모티브로 작곡되었다. TV와 네온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물건으로 조선의 군함인 거북선을 형상화한 작품으로부터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를 연상한 것은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사실 국악기와 서양악기 모두 오래전에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악기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국악기는 과거의 이미지를, 서양악기는 이 땅에 들어온 지 약 100년 정도 되기에 비교적 새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질적인 두 악기군이 대립보다는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는 것 또한 이질적인 요소들에서 조화를 창조하는 백남준과 연결된다. 이를 통해, 잊지 말아야 할 예스러운 멋과 오늘날의 새로운 매력의 조화를 들려주며, 잊히고 있던,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낡은 기억들을 그린다. 또한 이 곡들을 들으면 다양한 음색의 향연이 백남준의 비디오처럼 보이고, 유려한 선이 프랙탈 거북선의 위용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작곡자가 프랙탈 거북선으로부터 얻은 음악적 감흥일지도 모르겠다.

 

연주 돌아보기 II: 존 케이지를 넘어 삶으로

이번 음악회에서는 또 하나의 존 케이지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존 케이지가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는 그가 주창한 우연 음악이라는 새로운 개념 때문이며, 백남준에 큰 감흥을 준 것은 우연 음악이 갖는 임의성 혹은 현장성이었다. 존 케이지는 약 20년간 이러한 음악을 연구하며 많은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433>(1952)이다. 텅 빈 악보에 작곡가와 연주자를 모두 사라지게 한 이 기이한 작품의 의도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데에 있다. , 지금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는 것이다. ‘만 바라보는 이 세대에, 주변을 들어본다는 것은 매우 낯설고도 참기 힘든 고통일 수도 있다. 이를 참고 해내는 것은 주도자의 참선과도 통한다. , <433>는 들으면서 구도자가 되는 것이다. 비록 홀 내부에서 벌어지는 연주회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므로 작품의 의도를 충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전히 흐르는 시간만을 느끼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인 것만은 분명하다. 무대에 오른 네 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드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큰 갈채를 받았다. 듣기 위해 온 자리에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역설은 관객을 침묵의 연주자로 변모시켰기에, 감상자 자신에게 보내는 갈채이기도 하다.

이어지는 전현석 작곡가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흩어진 점들>(Diffused Dots: 2017)은 공모당선작으로,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백남준의 이 작품은 피아노와 테이프를 위한 작품으로, 특히 테이프에는 클래식 음악의 단편들과 주변의 각종 소음이 가득 들어있다. 존 케이지의 <433>를 수행하면서 들을 수도 있는 소리다. 이 소리는 네 개의 릴테이프로 나뉘어서 액자에 설치해 놓았는데, 전현석 작곡가는 이로부터 공간에 배치된 네 명의 현악기 연주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릴테이프에 담겨있을 소리를 네 명의 연주자들이 거친 질감의 다양한 음향으로 구현했다. 이것은 앞서 김신이 작업했던 것과 같은, 상상 속 소리의 구현이다. 또한 이 작품은 네 명의 연주자가 무대에 넓게 퍼져 연주함으로써 공간을 통해 들리도록, 즉 감상자가 주변의 소리로써 인지되도록 했다. 이것은 백남준을 넘어 존 케이지와도 연결된다. , 연주자가 공간의 다양한 위치에 배치되어 연주하는 작품은 많이 있지만, 전현석의 <흩어진 점들>은 이러한 삶과 예술에 대한 사고가 바탕에 있다. 하지만 본래 객석에도 연주자들이 넓게 퍼져있어야 하지만, 코로나19 방역 정책으로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만 있어야 했다. 재연의 기회에 작품의 의도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마지막 작품인 백영은 작곡가의 비올라와 세 명의 타악기 연주자를 위한 <TV 가든>(2017, rev. 2021)은 백남준의 동명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각종 식물로 꾸며진 정원 속에서 여러 대의 TV가 쉴 새 없이 분주하게 빛을 내는 작품이다. 백영은 작곡가는 이 작품에서 이 땅의 생명체들의 삶과 백남준의 삶을 보았다. 익숙한 모습으로 익숙한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고 그 속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완전히 구별된 삶을 살아간 백남준. 그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았겠지만, 삶이 곧 예술이라는 신조를 내세운 플럭서스의 중요 멤버로서 자신의 예술에 우리의 삶을 녹이고자 했다. 백영은 작곡가는 그의 작품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삶을 감지했다. 그리고 비올라의 날갯짓에 주목하면서도, ‘타악기로 묶이지만 저마다의 색다른 소리를 울리는 악기들을 통해 개성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또한 바라보게 한다.

 

오늘의 예술을 만들어간다는 것

과거의 예술로부터 오늘의 예술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오늘날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지만, 과거를 애써 외면하려는 움직임은 수천 년의 인류 역사에서 최근 100년뿐이다. 예술이 우리가 삶에서 깨닫지 못한 것을 (그것이 단지 미적 취향이든 구체적인 메시지든)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 과거에 대한 연구와 성찰은 예술가의 선택보다는 의무에 가깝다. 화음챔버오케스트라가 진행하는 올해의 재연 시리즈는 이 과업의 성실한 수행으로서, 백남준의 예술을 반추하고, 이를 통해 재탄생한 우리 시대의 예술도 만나는 뜻깊은 자리였다. 더 나아가 화음프로젝트의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보고이며, 재구성을 통해 오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었다. 여기에 상상을 더하여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날이 아닌, 현실로 만들 기획이 계속 만들어질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