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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2020 화음 프로젝트 아카데미: 탐구-현대음악 렉처콘서트 시리즈 Ⅲ]우연음악은 우연한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서주원 / 2021-04-05 / HIT : 194

화음챔버오케스트라 현대음악 렉처 콘서트 시리즈 III

음악가들의 주사위놀이: 우연음악

 

 

 

우연음악은 우연한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양면성

 

 

어떤 일이 일단 발생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결정적인 것이 된다. 작곡과 연주도 그러하다.

 

수많은 작곡가들은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수없이 곡을 고친다. 수정 작업의 절정은 베토벤이 남긴 방대한 양의 스케치 자료에서 볼 수 있다. 베토벤은 어떤 부분에서는 악보 위에 고치고 또 고쳐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거인 베토벤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시작한 첫 교향곡 작곡을 43세에 완성해서 발표했다. 생상스 같은 작곡가는 동물들을 묘사한 동물의 사육제가 자신의 이미지를 가볍게 만든다고 여겨 14개의 곡 중 생전에 단 한 곡만 출판을 허락했다. 출판되는 순간 결정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출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출판 이후에도 개정을 하는 작곡가들도 많지만 이전에 출판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연주도 마찬가지다. 연주는 무대 위 그 순간 단 한 번 행해진다. 음악은 탄생하는 순간 소멸하지만 일단 세상에 나온 소리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것이 된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 할지라도 무대 공포증에서 자유로운 이는 극히 드물다. 한 연주자는 이 한 순간에 쏟아 부어야 하는 마음노심초사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완벽할 수 없는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마음은 고달프다. 연주홀, 악기 상태, 연주자의 컨디션, 관객의 호응 등 우연히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 최상의 연주를 할 수도 있지만 많은 연주자들을 추동하는 힘은 기대라기보다는 불안이다. 연주자들은 무대 위에서 뜻하지 않은 실수가 발생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연습에 골몰한다.

 

악보에 적는 일이나 소리를 내는 일이 결정적이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닫혀있다는 뜻이다.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더라도 일단 어떤 한 음으로 탄생하면 다른 가능성은 없다. 그런데 음을 결정하는 것부터 다른 가능성을 탐색한 음악이 있다. 이번 화음챔버의 렉처 콘서트는 이것을 다룬다. “음악가들의 주사위놀이: 우연음악을 주제로 렉처를 맡은 해설가 송주호에 따르면 이 우연음악은 음이 나아갈 방향에 무한한 가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연성

 

 

20201213일 오후2시에 예술의 전당 IBK홀 연주가 예정됐던 이번 연주회는 연주 3일 전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연주회가 취소됐다. 화음챔버는 1212일 오후3시부터 압구정동 세실아트홀에서 모든 연주곡을 녹화하고 해설이 포함된 전체 영상을 2021323일에 공개했다. 대면 연주회가 비대면 연주회로 전환된 이 과정은 우연적인 일이었고, 화음챔버로서는 결과적으로 필연적인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일부 청중만 향유하는 일회성 연주회가 아닌 영상으로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문제에 대해서 화음챔버는 몇 년 전부터 고민해오고 있었다.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현장이 주는 생생한 감각과 감동을 전하기 힘든 비대면 연주는 구체적인 실행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비대면 연주회는 대안이 될 수 있어도 현장 연주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세계적 감염병의 유행으로 이제 비대면 연주회는 대세가 되었다.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던 변화가 급물결을 탔다. 화음챔버 역시 우연한 계기로 이 흐름에 뛰어들었다.

 

연주회 대신 참여한 녹음 현장은 리허설과 연주가 결합된 형태였다. 사실 모든 녹음 현장은 이러한 형태일 것이다. 한 번에 녹음이 끝나는 연주는 실황연주밖에 없다. 만족스러운 연주가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녹음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우연음악도 우연하게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없으며, 최종 선택된 결과물은 또한 그 순간의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 명백해보였다. 본 글에서 다루는 비평대상은 영상으로 완성된 렉처와 연주뿐만 아니라 리허설 녹음과정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우연음악

 

 

화음 렉처 콘서트에서 우연성을 실험한 작품은 6개였다. 우연음악이란 음악 요소 중 몇 가지를 작곡가의 의도와 무관한 우연에 맡기며, 음악에서 통제가 아닌 임의성과 자유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첫 작품인 모차르트의 음악의 주사위 놀이, K.516f’2개의 주사위를 사용해서 24마디의 3/8박자 왈츠를 구성한다. 음형은 172개로 미리 지정되어 있지만 2개의 주사위를 16번 굴려 완성할 수 있는 곡의 수는 약 46천조 개에 이른다. 이날 연주된 3개의 작품은 펜 대신 주사위를 굴려 선택된 조합이었다.

 

모튼 팰드먼의 투영 2은 전통적인 오선지를 벗어난 악보이다. 플루트, 트럼펫,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이 작품은 여러 사각형 도형, 영문자 등의 기호로 기보되어 있다. 악보는 단순하지만 연주는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음정(고음·중음·저음의 영역)과 연주법(피치카토·하모닉스 등)만 표시되어 있어 연주자들은 해독에 가까운 해석과 결정을 동시에 해야 했다.

 

얼 브라운의 노바라는 작품의 소재들이 여러 단편들로 악보에 표기되어 있지만 그 순서와 속도, 반복이 연주 중 지휘자에 의해 즉각적으로 결정되는 열린 형식을 사용한 작품이다. 작곡가의 설명에 따르면, “연주 과정은 지휘자와 음 소재, 음악가 사이에서 발전하고 열려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실제 녹음 과정에서는 이 임의로 선택된 음악적 단편들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갈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플루트, 트럼펫, 클라리넷, 피아노, 바이올린1,2, 비올라, 첼로를 위한 이 작품 역시 세 번째 녹음에 이르러 연주자들 간의 호흡과 연결이 자연스러워졌다. 완성도 높은 연주라는 기준을 세우기 모호한 탓인지 연주에서 음악의 흐름 외에 다른 것들은 크게 고려되지 않았다.

 

이번 공연을 위한 당선작인 작곡가 이성현의 으뜸화음, 딸림화음, 버금딸림화음이 더 필요해?’는 전통적인 조성과 그에 대한 패러디를 표현한 작품이다. 작곡가에 따르면, “각 악기는 각자 다른 조성의 주요 음들을 연주하며, 음악은 각 연주자들의 조성음악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변주되며, “피아노는 따분한 메트로놈의 박자에 맞추어 가짜 지휘자처럼 행동한다. 작곡가는 구태의연하게 반복하는 관습과 일반적인 클래식 음악의 진지함에 저항하는 의미를 작품에 담았다. 플루트, 바이올린을 비롯한 7개의 악기들은 상대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단편을 반복하다가 정해진 횟수가 채워지면 다음 단편으로 진행한다. 함께 있지만 유대감 없이 각자의 것에 골몰하는 파편적인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작곡가가 추구하는 감상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에 부합하게 역동적이고 극적이며 다채로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에 연주된 테리 라일리의 다장조로와 더불어 감상의 숨을 틔우는 작품이었다.

 

비톨드 루토스와프스키의 현악사중주역시 연주자의 선택에 따라 음악이 새롭게 결정되는 요소를 도입한 작품이다. 현악기들은 한 섹션을 같이 시작하지만 다음 섹션 때까지 선율과 리듬만 표기된 악보를 각자 자유롭게 연주한다. 테리 라일리의 다장조로는 단순한 단편을 반복하는 미니멀리즘의 특징과 우연음악의 특징이 결합된 작품이다. 악기가 지정되어 있지 않아 연주 때마다 다른 음색의 조합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연주 시간도 15분에서 길게는 수 시간도 가능하다. 각기 다른 선율 단편은 모두 53개이며, 이 선율 단편은 첫 단편부터 차례로 반복 연주되는데 연주에 참여한 모든 연주자가 동시에 시작하지 않고 차례로 합류해서 연주되는 그 순간에만 탄생 가능한 음악을 들려준다.

 

 

우연음악은 우연한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우연음악 리허설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연음악 연주 실제는 우연이라는 가벼운 어감과 자유라는 경쾌한 느낌과는 실제로 거리가 먼 것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앙상블의 경우에 각 연주자들에게 부여한 우연과 자유를 조합해 하나로 완성시키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루토스와프스키의 작품에서 네 명의 현악 연주자는 까다로운 악보를 정확히 읽어내 구체화시키며 서로에게 민첩하게 반응해야 했다. 리허설이 반복될수록 연주는 더 치밀해지고 치열해졌다. 우연히 손과 마음이 맞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우연과 영감에 의존해서 단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른 음악의 연주 이상으로 우연음악은 노련하고 숙련된 연주자들이 극도의 집중력을 가지고 연주를 해야 한다.

 

펠트먼의 작품 또한 다섯 연주자의 흐름이 어긋남 없이 함께 가야 했다. 작품에 특별한 서사가 없으니 살얼음판이 되었다. 맥락을 파악하기 어려워 연주자들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펠드먼은 케이지와 같이 작곡가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을 쓰고자했다. 오직 그 순간들에 집중해서 다시는 똑같은 음향으로 조합되지 않을 소리들을 만들어 가는 연주자들의 날선 모습은 우연음악이 의미하는 자유가 방종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보여주었다. 몇 시간이라도 반복할 수 있는 라일리의 다장조로에서도 C음이 메트로놈처럼 반복 연주해 질서를 잡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엉켜버릴 위험이 크다.

 

한편 감상의 관점에서 보면 우연음악은 그 의도처럼 우연한 음악으로 들리지 않는다. 결과물만 두고 보면 그것이 즉흥적인 연주의 산물인지 정확한 측정에 의한 연주인지 판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형화된 연주가 없으니 비교대상이 없고 작품의 완성도를 생각하기에는 기준을 찾기 힘들다. 물론 연주에는 특유의 기운이 담기므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연주자들의 에너지가 작품에 집약되어 있는지 아니면 산만하게 진행되는지 정도는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첫 연주곡목인 모차르트의 짧은 왈츠 3곡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사위를 굴려서 만든 이 작품들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가 일필휘지로 썼다는 여느 짧은 소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단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연주만 들어서는 작업과정이 전혀 다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없었다. 서두에 언급했듯 감상자는 연주된 그 순간의 음악을 우연의 산물이라기보다는 필연적인 결과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46천개의 가능성 중 3개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완성된 작품은 그 자체로 결정적이다.

 

 

명상적 감상

 

 

펠트먼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작곡가는 감상자에게 순간의 소리에만 집중할 것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기존의 서사적 청취 습관을 버리고, 소리 자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에 마음을 열어, 그 본질을 즐기는 무위의 경지로 나아갈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또한 송주호 해설가는 감상에 앞서 멜로디, 리듬, 화음을 파악하려고 하지 말고 연주자들이 임의로 만들어내는 소리에만 집중하며 환상적인 소리 공간에 마음을 맡기기를 바란다.”라고 안내했다. 작품의 본질을 짚어내며 최상의 감상 태도를 소개하는 해설이었다.

 

그러나 감상자들이 익숙해져있던 청취의 방식을 단번에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기존에 따르던 판단의 기준을 없앤다면 순식간에 무위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맥락 없는 소리의 나열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그 순간 울리는 음들에만 집중하는 감상 태도는 명상적 감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명상이 어렵듯 명상적 감상은 어렵다. 온전히 깨어서 순간에 집중하라는 주문을 받고 곧바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사고를 전환시키고 감각들을 온전히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의식적이고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감상 태도의 전환에 앞서 왜 이러한 도전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필요성과 의미를 충분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귀가 열리는 감상을 위하여

 

 

서양음악 역사에서 연주와 청취의 패러다임을 바꾼 우연음악이 숙달된 연주자들에게도 어려운 도전이라면 감상자들에게는 더욱 버거운 도전이다. 여기에서 감상자들이란 소수 전문가 집단이 아닌 일반 청중을 의미하며, 렉처 콘서트가 주요 대상으로 삼는 이들이다. 이 기획은 아는 이들만 더욱 즐기기 위한 시리즈가 아니다. 감각을 예민하게 벼리고 감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화음챔버 렉처 콘서트 시리즈가 다른 어떤 현대음악 연주회보다 충실한 프로그램 노트와 친절한 해설로 현대음악을 안내하고 있지만 감상자들에게는 여전히 전연 새로운 음악들의 의도와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우연음악에서 새로운 기보법이라는 혁신적인 내용을 다루기 위해서 독특한 악보의 시각 자료뿐만 아니라 간략하게마나 해독 방식이나 연주에 앞서서 짧은 시범 연주 같은 방식은 흥미를 끌고 이해를 돕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획단계에서부터 렉처의 해설자가 긴밀히 관여하고 연주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청중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즉 렉처의 비중이 훨씬 많아져야 하는 것이다.

 

목표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듣지 못하는 사람도 듣게 하는 것이다. 주제가 우연음악이라면 감상자들이 주제 음악들을 그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하고 우연한 음악으로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렉처 콘서트의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즐긴다고 하지만, 즐길 수 있는 대상을 더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서주원 (bwv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