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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畵/音.zine vol.5] 신화는 어떻게 음악이 되었는가?
이민희 / 2023-03-01 / HIT : 142

신화는 어떻게 음악이 되었는가?

이민희 (음악학박사, 음악평론가)

 

 

신화란 “종교적 교리 및 의례의 언어적 진술”로,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위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는 씨족사회의 시작과 근본을 서술하며, 수로신화나 단군신화 등은 특정 시기 국가의 건국이나 역사적 믿음 등을 형상화한다. 또한 신화는 동아시아나 유럽, 아프리카 등 각 지역의 특성을 담고 있는 만큼 모든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신화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도 그리스·로마 신화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발생하여 로마 제국으로 이어진 이 일련의 이야기들은 제우스와 헤라, 디오니소스 등의 다채로운 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기반이 되는 지리적이고도 문화적인 공동체가 서양문화의 기본이 되어 전승되었기 때문에, 서양문화에 익숙한 오늘날 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중요성은 막강하다. 음악의 경우에도 그리스·로마 시대를 거쳐 천년이 넘는 중세의 교회문화가 이어졌으며 르네상스를 거쳐 종국에는 19세기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안에 그리스·로마 신화가 뿌리내려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양상이 항상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작곡가들마다 국가 정체성을 작품에 투영하기 시작하면서 ‘자국의 신화’가 대거 등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바그너의 작품에는 게르만 신화가, 시벨리우스의 작품에는 핀란드 신화가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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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Raffaello Sanzio)가 그린 ‘신들의 회의’ / greekgodsparadise.com

 

 

주목할 것은 신화가 어떻게 음악 안에 자리를 잡았고, 음악은 신화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에 대해서다. 직접적인 서사를 필요로 하는 오페라는 신화를 서사의 얼개로 자주 등장시켜왔으며,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관념이나 텍스트를 제목으로 삼는 ‘표제음악’의 경우에도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종종 출현한다. 더 나아가 신화는 그 안에 음악에 관한 진술이나 악기 등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음악이 어떠해야 하는지 혹은 음악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암시를 주곤 했다.

 

 

오페라의 줄거리가 된 신화들

 

가장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신화와 음악의 결합은 오페라의 줄거리로 신화를 차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문화권에 있는 청중 대부분은 신화의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기에, 초연이라 할지라도 낯선 초연 오페라가 주는 충격을 방어할 수 있다. 예컨대 작곡가의 입장에서 오페라의 서사로 신화를 활용한다는 것은 이미 익숙한 줄거리 위에 새로운 음악적 변용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래서인지 신화는 1600년경 오페라가 최초로 발명되는 시점에서부터 음악과 결합했다. 1597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초연된 페리(Jacopo Peri, 1561-1633)의 <다프네>(Daphne)를 비롯하여 1601년 페리와 카치니(Giulio Caccini, 1551-1618)의 <에우리디체>(Euridice), 1607년 만토바에서 초연된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의 <오르페오>(L'Orfeo) 등. 최초의 오페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오 이야기’에 음악을 붙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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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터(Edward Poynter)가 그린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 wikimedia.org​

 

 

‘오르페오 이야기’는 음악사에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신화이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한 오르페오와 그의 부인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로, 에우리디케가 독사에게 발뒤꿈치를 물려 죽자 오르페오는 저승에 가서 신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만난다. 이들에게 에우리디케를 돌려달라고 설득하며 리라 연주를 하고, 결국 지하세계를 빠져나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조건과 함께 아내를 되찾게 된다. 하지만 오르페오는 뒤를 돌아보게 되고 결국 아내를 영원히 잃는다. 이처럼 ‘오르페오 이야기’ 안에 평범한 이들의 일상은 배제되어 있으며, 대신 신과 지옥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함께 현실과는 한 층 거리를 둔 관념과 이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따라서 신화와 결합한 오페라는 무엇보다도 바로크 귀족과 왕족의 사랑을 받았고, ‘오페라 세리아’라는 고유의 카테고리를 형성하게 되었다. 후에 영국의 작곡가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 작곡한 오페라 <디도와 애네아스>(Dido and Aeneas, 1689)도, 그리고 고전주의 작곡가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 1762)도 오르페오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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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달그림자>의 공연장면 © A. T. Schaefer / pagh-paan.com

 

 

한편 신화는 오페라와 결합함으로써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기존의 인물상이 뒤집히거나, 그 상징이 비틀리기도 한다. 음악이 신화에 결합함으로써 신화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작곡가 박영희(1945-)의 오페라 <달그림자>(Mondschatten)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유명한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와 그의 큰딸 안티고네가 등장한다. 이 오페라에서는 아버지와 큰딸 그리고 폴리네이케스 세 사람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전개되며,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기 위해 눈을 찔러 맹인이 되고 딸 안티고네와 함께 안식의 땅을 찾아 유랑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소포클레스(BC.496-BC.406)의 텍스트를 토대로 포틀러(Juliane Votteler)가 대본을 썼으며, 여기에 철학자 한병철의 시 「상흔을 꿈꾸며」(Wundgerträumt, 2003)가 인용되었다. 본래 이야기의 얼개를 유지하되 특정 부분이 강조 및 발췌되었고,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져 청중을 만난 것이다.

 

이 작품은 2006년 슈투트가르트의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에 설치된 실험적인 무대에서 잉그리드 폰 봔토흐-레콥스키(Ingrid von Wantoch-Rekowski) 연출로 초연됐으며, 의상·연출 등에 있어 추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박영희 작곡가의 음악어법 또한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19세기 오페라와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감상하는 청중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활용했을 가장 큰 단서는 바로 ‘오이디푸스 신화’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신화는 오페라로 변용되는 과정에서 ‘여성’인 딸의 비중이 커졌고, 이를 통해 주인공의 내면이나 행위 그리고 상징에 대해 새롭게 재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오페라와 결합됨으로써 해석의 새로운 지평에 마주하는 것이다.

 

 

표제가 된 신화들

 

신화를 기악음악의 표제로 활용함으로써 그 음악이 의미하는 바나 지향하는 바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이는 19세기 낭만주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화와 음악의 결합 방식으로서, 제목을 갖는 ‘교향시’ 및 ‘서곡’ 장르가 대유행을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이 시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오르페우스’를 비롯하여 ‘프로메테우스’ 등 신화 속 다양한 인물들이 작품의 표제로 활용되었다. 특히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제우스에게 가혹한 처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가 많은 작곡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프로메테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쇠사슬로 카우카수스 산 절벽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지만, 간은 밤새 돋아 다음날 같은 고통을 반복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금기를 넘어선 도전으로 고통을 받는 자로서, 그럼에도 이를 계속해서 극복해내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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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Peter Rubens)가 그린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 caixaforum.org

 

 

리스트의 교향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1850/1855, S.99)는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기초한 작품으로 그의 고난과 최후의 승리를 음악화한다. 1850년에 서곡과 여덟 개의 합창곡으로 먼저 작곡되었으며 1855년에 서곡을 확대해 교향시가 되었다. 작품 안에는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을 비롯하여 그와 제우스와의 불편한 관계 등이 표현되는데, 이는 본래 합창 텍스트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특히 <프로메테우스> 교향시에는 “옛 양식에서 벗어나 미래의 음악을 추구한 [리스트] 자신의 음악적 의지”가 프로메테우스에 투영되어 있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결국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 ‘불’이라는 도구를 도입시킨 프로메테우스처럼, 리스트 역시 혁신적인 음악을 통해 음악사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기악으로만 존재하는 음악이지만, 신화를 제목으로 차용함으로써 음악 그 이상의 것을 청중이 듣고 상상하게 한다. 이를 통해 청중은 구체적인 서사나 상징 등을 떠올리며 작품을 접하게 되고, ‘일반적인 단어’로 구성된 표제가 활용된 음악에 비해 작곡가가 의도하고자 했던 음악의 분위기나 성격을 보다 강렬하게 이해할 수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Die Geschöpfe des Prometheus, Op. 43) 역시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다룬다. 1800년 작곡되어 이듬해 빈의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2막 구성이다. 베토벤의 유일한 발레음악으로, 오늘날에는 출판이 된 서곡만 연주된다. 당시에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인물이 나폴레옹에 빗대어 지곤 했는데, 나폴레옹에 열광했던 당대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려 발레 작가이자 무용가였던 살바토레 비가노가 이 작품을 기획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비가노는 이 작품에 ‘영웅적, 알레고리 발레’라는 부제를 달았다. 베토벤 역시 이 작품이 나폴레옹을 형상화하고 있기에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을 시작으로 <영웅 변주곡>(Op. 35), <영웅 교향곡>(1803/1804) 등을 통해 ‘영웅’ 모티브를 계속해서 작곡의 원천으로 사용한다. 한발 더 나아가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했던 음악요소를 이후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데, <영웅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 프로메테우스 모티브가 등장하는 것이 좋은 예다. 이런 단서를 통해 베토벤의 음악 안에서 ‘나폴레옹’이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베토벤이 프로메테우스에 집중했던 이유는 단지 나폴레옹 때문만은 아닌데, 베토벤 그 자신도 프로메테우스에 공감하며 자신을 이 인물에 빗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홀로 고독하게 주관적인 음악을 작곡했던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악기의 속성과 악기에 대한 관념을 간직한 신화들

 

신화가 음악과 맺은 가장 오래되고도 독특한 관계는 ‘악기’와 연관되어 있다. 신화는 특정 악기의 속성이나 그 악기가 상징하는 바를 그 안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악기에 대한 관념을 긴 시간 보존하고, 은연중에 설파해왔다. 무엇보다도 “인간성과 행위에 대한 가치가 악기의 모습으로 투사”되며, 결국 신화 속 악기는 “인간 가치의 알레고리”로까지 이해될 수 있다. 이를테면 “절제된 음색의 현악기, 열정적인 음색의 관악기”, 그리고 화음을 연주하는 오르간이 각각 이성, 감성, 우주의 조화로 해독되곤 한다.

 

신화 안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악기는 아폴론의 ‘리라’(Lyre)이다. 이 악기는 극히 지적인 것으로 그려지며, 아폴론의 속성인 이성적 사고를 상징한다. 한편 관악기에 해당하는 ‘아울로스’(Aulos)는 광란에 휩싸여 있는, 다소 저속하기까지 한 흥분을 이끌어내는 악기로 묘사된다. 특히 오르페오 이야기 안에서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광신도들이 아울로스 소리로 오르페오의 리라 소리를 삼키는 장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에우리디케를 잃고 지상으로 홀로 온 오르페오는 슬픔에 빠져 트라키아의 동굴에 은거하는데, 에우리디케를 잃고 난 후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할 수 없게 된 상태다. 이에 트라키아의 처녀들은 자신을 모욕한 오르페오에게 돌과 창을 던지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로 ‘광기에 취한 채’ 관악기 연주를 행한다. 그리고 이 관악기 소리가 리라 소리를 삼키게 되면서 결국 오르페오 또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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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로스를 연주하는 악사의 볼록 튀어나온 볼

 

 

  이렇게 관악기는 디오니소스 제전의 중심에 위치하는 악기로 열정과 본능 그리고 진솔한 표현을 의미한다. 특히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아울로스를 연주할 때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이유로 이 악기를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현대의 재즈 음악에서 흑인 연주자들이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찌푸린 표정으로 악기를 부는 모습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관악기는 그 연주하는 장면 자체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무언가로 형상화되어 왔던 것이다. 관악기가 유독 사람의 숨을 불어넣어 소리를 낸다는 점, 그리고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점은 이 악기를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쉽게 연결시키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오르페오가 연주하는 ‘리라’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이와 같이 ‘부는 악기’가 위치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더 관념화하면 관악기는 ‘감성’의 영역을, 현악기는 ‘이성’의 영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신화는 음악과 함께함으로써 그리고 그 안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담게 됨으로써 ‘영속성’이라는 그 본연의 특질을 공고히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화는 그 탄생 시점으로부터 수 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새로운 음악 미디어와 함께 새로운 세대의 기억 속에 거하게 되었다. [畵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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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신화’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33583

그리스 · 로마 신화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42192&docId=3381068&categoryId=58289

이재용, “신화 속의 음악 : 동서양 신화를 통해 보는 악기의 알레고리”,  『음악사연구』 3, 2014.

다음 클래식 백과 ‘프로메테우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97XXXXXXX900

우혜언,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음악적 수용”, 『서양음악학』 22/1, 2019.